‘경향잡지 100년, 다시 100년을 향하여’
국내에서 교회 안팎을 통틀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잡지인 <경향잡지>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한국 사회와 교회에 끼친 영향을 점검해보는 학술 세미나가 5월 12일 오후 2시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에서 열렸다.‘경향잡지 100년, 다시 100년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이번 학술 세미나는 시대적 변화에 걸맞는 한국 최고(最古)의 잡지로서 사회와 교회 안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신앙인과 백성의 백년지기”
한국 잡지의 역사요 보고이며 언문일치와 한글 보급에 공헌
▨주제발표 : 한국 최장수 잡지 <경향잡지> 연구
윤세민(언론학 박사, 경인여대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부 교수)
우리나라 최장수 잡지인 <경향잡지>연구는 곧 한국 잡지에 대한 연구이자 한국 천주교에 대한 연구이다. 그 역사 연구를 위해서 두 가지 축, 즉 경향잡지 자체의 역사와 객관적 고찰을 위한 한국 잡지 전체의 역사의 고찰이 필요하다.
역사
<경향잡지> 자체의 역사는 <경향신문>의 부록으로 역할 했던 ‘제1기 <보감> 시대’(1906년 10월~1910년 12월), 본격적인 천주교 잡지로 성장해 가면서도 일제의 탄압과 통제로 신음했던 ‘제2기 통제 속의 성장기’(1911년 1월~1945년 5월), 해방과 미군정, 6.25 전쟁과 제1공화국의 정치적 혼란 속에 <경향잡지>도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성숙해 갔던 ‘제3기 혼란 속의 성숙기’(1946년 8월~1959년 6월), 잡지의 발행권이 서울교구로부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로 이관됨으로써 천주교의 공식 기관지로 역할 하던 ‘제4기 정착기’(1959년 7월~2003년 12월), 잡지 전체 지면의 원색 인쇄에 돌입하며 새로운 기획과 편집으로 잡지 발전을 꾀하고 있는 ‘제5기 발전기’(2004년 1월~현재)로 나눌 수 있다.
내용
교회를 향해서는 ‘신앙인의 백년지기’로서 목소리를 다해 왔으며, 사회를 향해서는 시대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백성의 백년지기’로서 목소리를 울려 왔다.
제1기 보감시대는 초창기 주요 연재기사로 논설, 법률문답, 대한성교사기 등을 두었는데, 순한글을 사용함으로써 언문일치와 한글보급운동에도 크게 공헌하였고, <경향신문>과 함께 개화기의 교회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근자에 와서는 민족사의 일환으로 무엇보다도 한국법사(韓國法史)를 이해하는 데도 귀중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제2기 통제 속의 성장기에는 새로운 기획들로 의욕을 보였는데, 특히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새로운 기획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만 1940년대 들어 일제의 검열과 통제 속에서 신앙과 민족을 배신한 친일 기사가 많은 치욕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에 대한 반성과 회개가 없었던 모습은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제3기 혼란 속의 성숙기는 천주교의 주요 행사들을 특집으로 꾸미기 시작한 점이 특기할 만하며, 전쟁 뒤라 교회 출판과 구독운동에 자체적으로 관심을 많이 보였다.
제4기 정착기에는 새로운 기획 연재 기사가 대폭 늘었다. 특히 60년을 비롯해 67년과 68년에 대량 양산되는데, 양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취재 기사, 문예물 증면, 만화와 사진 등으로 잡지로서의 다양성과 질이 향상됐다. 70년대에는 소외층에 관심을 두고 사회 현안을 짚어갔다. 80년대에는 한국천주교 200주년인 1984년에 초점이 맞춰졌고,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획과 특집, 그 외에 생명과 환경 등의 주제를 다각도로 짚었다. 90년대에는 민주화 진전에 따라 신앙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획이 많아졌다.
제5기 발전기에는 2003년 이후 외부 전문가 자문 아래 디자인이 개선되고 이듬해부터 기획, 편집에 혁신을 기했다.
의의와 과제
첫째, 경향잡지는 그 존재 자체가 가톨릭의 긍지이다. 교회 기관지로서 한국 천주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둘째,신앙인의 길잡이이다. 신앙인의 백년지기로서 보다 충실한 신앙생활을 안내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왔다.
셋째, 천주교인의 가교로서 사목자와 평신도가 만나 대화하는 다리인 것이다. 넷째, 시대의 목소리로서 수많은 질곡으로 점철되어온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시대마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다해왔다. 다섯째, 인간의 목소리로서 인간의 자유, 평등, 생명과 환경운동을 주창했고 소외된 이들을 대변해왔다.
여섯째, 한글 선도자로서 순한글 잡지로 탄생해 언문일치에 앞장섰고 한글보급운동과 민족계몽운동에 동참했다. 또 어느 잡지보다 앞서 전면 가로쓰기 편집을 했고 소중한 국문학 자료인 천주가사가 실려 있다. 일곱째, 우리 것 지킴이로서 우리 언어와 전통, 정서를 지켜왔다. 여덟째, 한국 잡지의 역사요 보고로서 살아있는 한국 잡지사의 사료이다.
제언
첫째, 경향잡지 고유의 정체성 확립이다. 창간 정신을 지키고 편집 철학의 일관성을 잃지 않는 정체성의 확립이 필요하다. 둘째, 반성과 회개이다. 지난 100년 동안 과오가 있었다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며, 특히 친일 행각은 속히 반성해야 한다. 셋째, 잡지 발전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전문적 재교육과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자주 받아야 한다. 넷째, 적극적 홍보와 마케팅이다. 비신자까지 포함하는 과학적이고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수립, 실천해야 한다. 다섯째, 비전이다. 미래를 향해 새로운 비전을 갖고 달려가야 한다.
“국내 최장수지에 대한 본격적 연구
원자료에 대한 실체적 접근에 의의”
▨ 논평1 :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질곡의 현대사를 경험해온 이땅에서 1세기 발행사를 기록한 잡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발표자는 식민지 시대의 훼절을 안타까워하며 사죄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에 대한 물음은 한 매체의 이력뿐만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 속에 잠재된 안타깝고 무기력한 고백을 확인하는 화두이다.
한편 발표자는 경향잡지의 위상을 “한국잡지사의 중요한 사료요, 존재하는 그 자체가 한국잡지의 역사요 보고”라고 정리하지만 이는 각론적이고도 핵심 축약적인 진술을 질러가 자칫 추상적 의미만으로 치부될 수 있다.
최장수지인 경향잡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와 관련한 연구는 매우 방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이 잡지가 포용하고 있는 수많은 키워드를 소화하는 문제와 관련해, 각론적인 연구는 매우 중요하며 특히 역사적 의미를 지닌 매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주제 논문이 <경향잡지>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라는 점, 원자료에 대한 실체적 접근, 또 그동안 여러 주년이 있었음에도 잡지에 대한 조명을 비껴가며 생긴 공백을 메우는 역할까지 함으로써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종국(혜천대학교 출판학과 교수, 한국출판학회 회장)
“시대에 따른 편집방향 밝히고 목차·기사·저자 색인도 나와야”
▨논평2 : <경향잡지>의 역사 연구에 있어서 시대 구분은 구분 원칙의 일관성 문제, 그 포괄 연대의 양적 측면의 균형 등은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또 <경향잡지>는 <보감>의 후신으로 설명하게 되는데, 그러한 주장의 정당성에 대한 확인 노력이 필요하다.
편집에 있어서는 영향을 미친 여러 사조들이나 시대적 조건에 대한 서술이 좀더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시대의 성격에 따라 그 편집 방향이나 서술 내용에 있어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보감> 단계에서는 개화사상의 보급, 3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문화민족주의적 경향, 60년대 후반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친 이후에는 교회 쇄신이라는 화두에서 잡지 편집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잡지가 지향하던 편집 방향과 시대별 특징의 연결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또 비교대상의 잡지 선정 폭의 확대가 필요하다. 잡지사상 위상을 분명히 하기 위해 동시대의 다른 일반 잡지들을 제시하는데, 그 중 종교 잡지가 덜 주목됐다. 한국잡지사에서 <경향잡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각 시대별로 일반잡지와 함께 종교지들을 비교 제시함이 좀 더 타당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경향잡지>가 차지한 기관지로서의 위상과 관련, 기관지로 공식 선언한 것이 지닌 의미, 그리고 기관지 선언 이후 그 효력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100주년을 맞아 전체 목차의 작성, 기사 색인이나 저자 색인, 내용 색인 등이 반드시 간행돼야 한다.
조광(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 한국사학과 교수, 문과대학 학장)
사진설명
<경향잡지>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5월 12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경향잡지 100년. 다시 100년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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