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물질적 필요에 귀 기울이고 예수님 이름으로 나눔에 앞장서야
8. 첫 번째 먹이심 (6,30-56)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적 이야기 중에서 예수님께서 군중을 먹이시는 두 가지 빵의 기적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6,30~44)이고, 다른 하나는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8,1~9) 이야기이다.
영화 <마르첼리노의 기적>에서 보듯이 빵이 펑펑 쏟아지는 광경을 상상한다면 자연물을 이용한 자연이적사화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기적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제자들에 대한 교육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야기의 구조가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에게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었다는 기적(1열왕 17,8~16)이나 엘리사가 보리떡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였다는 기적(2열왕 4,42~44)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이로써 예수님이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예언자들보다 훨씬 탁월한 분이심이 드러난다.
또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에게 만나를 먹이시는 기적(탈출 16장; 신명 8,3.16)을 일으키셨는데 예수님께서 외딴 곳에서 백성들을 기적적으로 먹이시는 것은 하느님의 종말론적 잔치를 생각하게 한다(이사25,6). 또한 무엇보다 성체성사가 주는 풍요로움을 생각할 수 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오천 명을 먹이심 (6,30~44)
예수님께서 전도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과 함께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려고 따로 배를 타고 떠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육로로 예수님의 일행보다 먼저 호숫가에 다다른다(30~33절).
배에서 내리신 예수님은 큰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한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34절). 예수님께서 스승으로서 친히 가르치시고 먹이시는 것처럼, 제자들 역시 스승을 따라 예수님의 사명을 잘 이어가야 한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군중의 끼니를 걱정한 제자들은 그들을 돌려보내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36절)라고 예수님께 청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37a절)고 이르신다. 제자들에게 군중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씀이시다.
아니, 이들을 다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은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제자들로선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한 능력 밖의 일이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수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나?”(38절). 그리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셔서 군중들을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잡게 하신다.
시편 23편의 푸른 풀밭에서 양떼를 먹이시는 목자 하느님을 생각하게 한다.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질서정연하게 무리 지어 앉은 모습은 더 이상 앞서 ‘목자 없는 양들’ 같은 측은한 모습이 아니다. 이들의 모습은 광야를 행진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조직을 상기시키는(탈출 18,21.25; 민수 31,14; 신명 1,15) 하느님 백성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져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41절) 영락없이 최후의 만찬과 성찬례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의 도움으로 군중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예수님의 행위는 기적을 설명하기보다는 제자들이 마음에 새겨 교회에서 실행하도록 가르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빵조각과 물고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한다. 열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숫자이니, 하느님 백성 모두, 곧 교회 전체 모든 사람에게 충분했다는 말이다.
또 빵을 먹은 사람이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니 모인 군중이 그 두세 배도 더 되었을 법하다.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권능에 의지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나누어 주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라.”그 어느 시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이 때에 여전히 기아와 빈곤, 전쟁과 폭력, 생태계 파괴와 살상무기로 지구촌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의 영적, 물질적 필요에 귀 기울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눔에 앞장서야 할 것 같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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