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에 구수한 향 가득
봄을 봄처럼 느껴보기 위해 떠난 길. 멀리 가기에는 세상이 소매를 끌어, 가까운 수락산(서울 노원구)에 올랐다. 산은 언제나 그대로 산이었다. 있는 그대로가 자연이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 삶의 지혜. 산이 힘들게 하면 힘들어 했고, 땀 흘리라면 땀 흘렸다. 그러자 산이 보람을 주고, 행복을 줬다. 노자(老子)의 ‘무위(無爲)의 위(爲)’(인위적 행위를 배제함)를 신선한 산 공기와 함께 가슴 깊이 넣었다.
도시의 각박함으로 날이 선 모난 성정이 둥그스름하게 연마될 즈음, 하산 길에서 ‘신앙 맛집’을 만났다. 노원구 상계1동 1131-12 ‘아바이 순대’(02-938-6225). 정통 북한식 순대 요리집이다. 주인장 이순복(소화데레사.60)씨가 친절하게 손님을 맡는다.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피난 온 시어머니가 1970년대 초반 을지로에서 순대국밥집을 열었고, 며느리인 이순복씨가 그 기술을 이어받아 20년째 수락산 자락에서 순대집을 운영해오고 있다고 했다.
국산 찹쌀과 야채의 절묘한 조화. 건강식 순대는 보기부터 먹음직스러웠다. 구수한 향은 상이 채 차려지지 않았는데도 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게 했다. 아바이 순대집이 자랑하는 육수(비법은 절대 공개 불가라고 했다) 가득 담긴 순대국도 함께 나왔다. 밥 한 공기 뚝딱 말아버렸다. 그리고 빨간 깍두기와 함께 푹푹 떠서 먹었다. 대를 이어 내려온 순대 요리 내공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입에서 살살 녹았다. 이마에 땀이 주루룩 흘렀다. 땀 흐를 땐 비법이 있다. 하얀 대접 사발에 막걸리 가득 따라 단숨에 비워버리면 그만이다. 술 한잔에 호기가 생겼다. 아바이 순대집에 오면 반드시 맛봐야 한다는 가자미식해, 녹두빈대떡, 함경도 북어구이를 주문했더니 이것 또한 별미다.
제대로 된 맛 집. 신앙도 제대로다. 개신교 모태 신앙을 가졌었다는 이순복씨. 우연히 마음이 동(動)해서 2001년 세례를 받았다. 세례식 날, 가족이 모두 천주교 신앙을 갖게 해 달라는 청원을 했는데, 지금은 남편과 아들 내외 등이 모두 세례 받고 신앙 가족이 됐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릇들이 하나 둘 비워졌다. 몇몇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갑자기 웬 전화냐고 묻는다. 다음 주에 수락산을 함께 오르자고 했다.
기사입력일 : 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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