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에서 하는 강복
우리 성당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두 개의 지역 사이에 위치해 있다. 주거지역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는 평지에 있어 걸어서 오가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는 편이다.
힘겨운 신자 가정들
그래서 미사 시간이나 회합 시간을 제외하고는 성당이 적막하다. 여유가 있는 신자들도 있지만 이곳에 사는 신자들 대부분이 서민들이다. 경기가 조금만 안 좋아도, 이곳 신자들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인 것이다.
가정 방문도 여의치가 않다. 주간에는 맞벌이 나가는 가정이 많고, 저녁에도 늦은 밤에야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듣게 되는 신자들의 사는 이야기는 안타까울 때가 많다. 경제적 어려움에 있는 가정, 병고로 힘겨워하는 가정, 정신적으로 고통 중에 있는 가정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기도를 바치기로 했다. 거리가 멀어서 성당에 오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서, 사는 것에 바빠서 기도할 수 없는 신자들을 위해서 내가 ‘대신이라도’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대신 기도해주는 사람
절실히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신자들을 위해 대신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 것이다. 어려운 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말해준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니 힘내십시오.”
성당을 나와 조금 걸어가면 이 지역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는 작은 산이 있다. 처음에는 운동 삼아 그곳에 올랐는데, 어느 새 나의 산행은 신자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매일은 아니지만 묵주기도를 바치며 산에 오르는 것을 즐긴다. 얕은 능선을 따라 사십여분 걷다보면 산꼭대기에 다다른다.
그곳에 서면, 한 눈에 우리 성당과 신자들이 살고 있는 이 지역이 보인다. 그곳에서 나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본당 신자들을 위해 천천히 장엄하게 강복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강복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중에 있는 가정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산위에서 십자가를 크게 긋는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빌어 준 모세(민수6, 22)를 흉내내며 간절한 마음으로 강복하는 것이다. 간혹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들키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상한 사람마냥 보이기도 하지만 산위에서 비밀스럽게 행하는 강복은 내게 있어서 소중한 기도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며칠 동안 산에 오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우리 신자들이 나의 축복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꾀를 부리는 것도 오래갈 수 없다.
신부님, 산에 안가세요?
혹여 바쁜 일이 있어 산에 오르지 못할 때에는 조바심도 난다. 혹시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 우리 신자들이 어려워지면 어떡하나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럴 때에는 신자들이 “신부님, 산에 왜 안가세요?”하고 물어 오는 것이 ‘신부님, 왜 우리를 위해 기도 안해주세요?’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되도록 자주 산에 오르고자 마음먹는다.
가끔씩 신자들이 “신부님의 기도 덕분에 어려웠던 일이 잘 풀렸다”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을 때 얼마나 고맙고 좋은지, 선물을 받은 어린 아이 마냥 즐겁다. 이 맛에 산에 오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주는 신자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도 어떤 한 가정의 어려운 사정을 들었다.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가정이다. 그래서 오늘도 점심을 먹고 천천히 산에 오르려고 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 가정을 위해, 또 다른 신자들의 가정을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산위에서 강복하려고 한다.
추교윤 신부(의정부교구 덕정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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