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신앙?" 맞벌이는 고민중
두 자녀를 둔 주부 소비아(비아·45)씨는 지난 9월 20일 가장 깨끗한 옷을 골라 입고 집을 나섰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다. 성당에서 반장으로 활동하는 소씨는 “남편 월급 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할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소씨는 오랜기간 함께 신앙생활해온 한 반원의 소개로 할인매장 임시 판매직원으로 취직했다. 소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당에 들러 신부님을 만났다. 그리고 “더 이상 반장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소씨는 “이제 더 이상 가정 주부도 아니고, ‘반장님’도 아니네요”라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기혼여성이 50%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20년 전보다 10% 이상 증가한 수치로 기혼 여성 두 명 중 한 명은 일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교회로선 이같은 맞벌이 부부 문제가 더 이상 ‘먼 산의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수원교구 ㅂ본당에선 두 달 전 구역장과 반장 7명이 직장을 구하면서 활동을 중지했지만 아직까지 그 일을 대신할 봉사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대전교구 ㄷ본당도 지난달 반장 5명이 맞벌이를 이유로 봉사를 그만두었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후보자를 찾지 못해 두 달째 해당 반모임 및 구역모임이 표류하고 있다.
평일에 열리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여성 신자 비율도 갈수록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지방 교구 관계자는 “올해 우리 교구에서 열린 순교자 현양대회에 참가한 여성 신자는 예년의 70% 수준”이라며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매년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교구 율전동본당 주임 김대영 신부는 “낮에 실시하던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을 저녁으로 옮겨야 할 정도로 낮 시간대 여성 봉사자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가 발표한 ‘구역?반장 신앙생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교구 구역·반장 중 30대가 5.1%, 40대가 36.2%, 50대가 43.1%, 60대 이상 15.4%로, 40∼50대가 대다수(79.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4년 조사 당시 30대가 35.5%를 차지하고, 30∼40대가 84.4%로 주 연령층을 차지한 것과 비교해볼 때 여성 봉사자 인력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맞벌이 부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2년 서울대교구 시노드 청소년 청년 의안준비위원회가 청소년 신자 1432명을 대상으로 한 당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10명에 4명꼴로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청소년의 77.2%가 “가정기도를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유로는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없어서’(41.8%)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맞벌이 문제가 단순한 여성신자 인력난을 넘어, 가정 신앙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서울대교구 본당 중고등학생 사목부가 의정부 한마음 청소년 수련마을에서 마련한 자모회 회장단 연수에서도 참가자들은 “맞벌이 부부 증가로 인한 자모회 인력 확보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문화선교 및 미디어선교를 강조하는 관계자들은 “맞벌이 문화가 앞으로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 바오로 수도회 안성철 신부는 “앞으로 여성 봉사 인력을 구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 질 것”이라며 “맞벌이 부부들이 성당 활동에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일하는 여성들의 교회 활동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방안으로 교회 사목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대교구 ‘화곡본동지역 공동사목’(화곡본동, 화곡6동, 신월1동본당)과 역촌동본당이 각각 지난 3월과 지난해 6월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젊은 엄마 및 맞벌이 부모를 위해 탁아방과 어린이 집을 개설한 것이 좋은 예다.
각종 교회 모임과 활동을 저녁시간대로 변경하는 등 취업 여성의 성당 활동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맞벌이 여성 신자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장 이브 칼베즈의 ‘교회와 경제 자유주의’(가톨릭출판사, 1997)를 번역하는 등 교회와 사회 관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는 추교윤 신부(의정부교구·사회학박사)는 지난해 가톨릭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교회는 이 시대 사회적 요구를 올바로 식별하고 시대 표징을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안성철 신부는 “맞벌이 부부 증가 문제는 가정 사목 차원에서 바라볼 때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고, 또 한국교회 가정사목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신부는 “여성 신자들의 활동은 지금까지 개인 의지 차원에서 그때그때 본당 요구에 맞춰 이뤄져 왔다”며 “이제는 다양한 가족단위 활동 및 봉사, 가족단위 신앙 증진 프로그램 마련, 가족 상담프로그램 실시, 소공동체를 통한 가족 활동 지원 등을 통해 여성 신자들의 교회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과 신앙’ 두마리 토끼 잡은 김해란씨
김해란(체칠리아·47·사진)씨. 10년 넘게 반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도 넘을 수 없는 산이 있었다. 5년 전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일하면서 반장직을 그만 두어야 했다. 반모임도 나갈 수 없었고, 본당 활동도 하나 둘 접어야 했다.
하지만 일 때문에 신앙마저 접은 것은 아니다. “일 때문에 신앙을 소홀히 하는 친구들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미사는 삶 그 자체입니다. 미사에 한 번 두 번 빠지면 생활이 메마르고 결국에는 삶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은 김씨를 두고 ‘신앙의 모델’이라고 말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탓에 주일 교중미사는 꿈도 꾸지 못하지만 늘 주일 새벽미사를 거르지 않는다. 직장에서 틈틈이 성무일도 기도를 바칠 정도로 기도 없이는 못사는 체질이다. 쉬는 날을 이용해 ME 등의 활동에도 열심이다.
“모든 냉담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내가 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김씨는 “신앙인은 부지런해야 한다”고 말한다. 편하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하는 신앙 생활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쪼개고 쪼개서 하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이 하느님께 향해 있다면 늘 하느님께서 옆에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김씨는 또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신앙생활을 거창하게 하려는 마음보다는 하나 둘 차분히 쌓아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면서 열심히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언젠가 하느님께서 나에게 꼭 맞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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