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지학순 주교 징역 15년 선고”
“池學淳 주교에 懲役 15년 宣告
- 비상군법회의 제3심판부, 자격정지 15년도 倂科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12일 내란선동 및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피의사건 선고 공판에서 비상보통군법회의 제3심판부로부터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보도된 판결문 내용을 요약하면 ‘피고인 등은 유신체제에 불만을 품고 유신체제를 부정, 학생들의 현실참여를 명분으로 한 학원소요를 이용해 현정부의 타도를 획책해오던 자들로서 민청학련에 주도된 국가변란기도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도 당연히 할 일을 다한 양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돼있다.”(가톨릭시보 1974년 8월 18일자 1면 중에서)
한국 천주교의 민주화 물결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을 이룬 1974년 7월 6일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의 체포. 재판부는 지주교에게 징역 15년 형을 내림으로써 정의 구현과 민주화를 위해 일어선 천주교회의 고위 성직자를 체포한 이유를 명백히 드러냈다.
지주교의 체포와 관련해서는 가톨릭시보에 정확한 정황이 나타나 있지 않았고,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 정황을 돌아보면 다음과 같다. 1974년에 접어들어 1월에는 긴급조치 1, 2, 9호가 선포됐고 4월에는 긴급조치 4호가 선포돼 민청학련에 관련된 활동을 엄단했다. 5월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기업공개와 건전한 기업 풍토의 조성을 위한 특별지시’가 시달됐다.
숨가쁘게 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교회의 사회 참여는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하다가 지주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태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7월 21일자 가톨릭시보 제1면 중앙에는 ‘불의는 우리의 공동책임’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전국의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은 10일 오후 6시 명동대성당에서 사회정의와 평화를 위한 미사를 공동집전했다. 전국 각지에서 급거 상경한 신부, 수도자, 평신도 등 지도급 인사 1천5백여명이 참석한 이날 미사에는 법절차 없이 박해받는 자와 사회 정의를 외치다가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엄숙히 기도했다.”
시보는 바로 그 밑에 지주교의 신변과 관련해 ‘지주교 귀국, 성모병원서 가료 중’이라는 제목으로 지주교가 6일 오후 4시 43분 CPA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으며, 성모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보도했다. 바로 그 옆에는 사고(社告) 형식을 통해 “부득이한 사정으로 지난 7월 14일자 신문은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해량 있으시길 비오며 앞으로도 배전의 성원을 바랍니다”라고 전한다.
지주교의 귀국은 6일이며, 정상적인 귀국기사가 실려야 할 7월 14일자 신문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휴간했다. 그리고 7월 10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주교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급거 상경’해 철야 기도회를 가졌다. 이로써 독자들은 지주교의 신변에 모종의 긴박한 움직임이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교회 역사상 박해시대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발생한 고위 성직자에 대한 용공 혐의와 체포, 그리고 형의 구형. 지주교의 체포와 재판은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서 천주교회와 정부와의 첨예한 긴장과 갈등 관계를 예시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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