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모든 문화·종교 차이 끌어안는 사랑이 필요하다
징의 울림 미학에 비유
세계 신학과 한국 신학의 창조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영성의 원동력을 징의 울림의 미학과 연결지어 성찰하고 싶다.
징을 만드는 데 쓰이는 놋쇠는 구리와 주석을 72 대 28 정도로 섞어서 만든다. 징 명인은 놋쇠를 달구어 판을 만들 때, 중앙과 가장자리를 동일한 두께로 만들지 않는다.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바닥 중앙을 두껍게 하고 가장자리를 얇게 메질해 간다. 이를테면 징의 원판은 평면이 아니라 완만한 곡면을 이룬다. 중심에서 가까운 부분은 대략 2.5mm, 가장자리는 두꺼운 것은 1.7mm, 얇은 것은 1.0mm 정도로 나타난다.
외형을 만들고 나서 담금질을 끝내면, 울림을 부여하는 작업을 한다. 이어서 나이테 모양의 굴곡을 새기고 구멍을 뚫어 손잡이 끈을 맨다. 굴곡을 새기고 손잡이 구멍을 뚫으면, 울림 구조에 영향을 미쳐서 징 소리가 숨어든다. 이렇게 숨어든 소리를 되찾는 고도의 망치질 작업으로 징의 제작이 끝난다.
징은 울림의 여운이 몇 구비의 파도를 그리며 길게 이어지면서 끝음이 올라가는 현상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징 울림을 ‘황소울음’에 비교하고, 징소리가 담을 넘고 언덕과 산을 넘어 굽이굽이 십리를 퍼져간다고 평해 온 것은 징 울림의 이런 특성 때문이다.
징 울림의 이 특성은 중심과 주변의 두께가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징의 원판에 굴곡까지 새겨져서 차이를 강화시킨 데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론된다. 이를테면 징이 징일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차이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메질이라는 고도의 숙련과 지극 정성을 토대로 한 모든 노고는 원판의 차이를 향한 것이고, 징 고유의 저 ‘황소울음’ 소리는 오로지 차이를 먹고만이 잉태할 수 있는 신기의 소리인 것이다.
아, 다름이 내재되어 있어서 발생하는 소리의 변조가 있다. 한 소리가 태어나서, 다르기 때문에야말로 매력이 있는 너의 소리를 부른다. 같이 안아서 가라앉았다가, 함께 얼려 춤추며 차오름을 이루고, 다시 한데 엉켜 바닥을 흘러도는 이 어울림의 세계. 울림이 시작될 때부터 상승과 하강, 바닥을 흐르다가 다시 차오르는 울림을 낳는 공명의 과정이 하느님의 품어 주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살리는 마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하는 마음을 닮았다.
차이가 발생시키는 이 어울림을 볼 줄 아는 신학과 사목은 복되다. 그것은 밑을 알아 위를 안고, 위를 품어 밑을 지켜 간다. 민중과 함께 바닥을 흐를 줄 아는 것, 밑이 되어 줄 줄 아는 것, 바로 이것만이 차오름을 낳는 모태이다. 차오름은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아 주기 위해, 밑이 되어 주기 위해 있는 거니까.
신학은 사랑이다
이 자기 비허(kenosis)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하느님의 육화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근본적이고도 궁극적으로 계시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위대한 교부들이 증거하는 것도 이것이다. 신학은 사랑이다. 사랑 없는 신학은 죽은 신학이다. 참으로, 하느님이 부여하신 차이를 천재로 지켜갈 줄 아는 성숙한 신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보게 한다. 이 세계의 모든 문화와 종교의 차이는, 그것이 참으로 살리는 힘을 갖고 있다면, 하느님의 손길이 닿은 흔적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그러므로 오늘의 한국 신학은 이 세계 온 존재들의 문화와 종교와 영혼의 노래의 차이를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지 않는, 오히려 차이를 축복으로 살게 하는 기풍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어린 백조가 미운오리로 따돌림 당하며 구박당하고 발길에 채인 이유가 오리들과 다르다는 데 있었다. 과거 그리스도교가 유다교나 로마나 조선의 정치세력에게 탄압당했던 것은 그들이 믿고 추구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다시 그리스도교가 역사의 주류를 형성하였을 때, 그리스도 신앙을 기준으로 인디언과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들을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하고 탄압하였던 전력이 있기도 하다. 차이가 억압당하던 이 아픈 역사를 직시하여 저 모든 차이의 생명들이 해방에 이르게 하는 신학, 징 울림의 저 바닥 되기를 함께 거치면서 차오름의 해방을 맛볼 줄 아는 신학, 오늘 이 다원의 시대에 요청되는 것이 바로 이런 신학이다. 이런 신학을 위하여 오늘의 한국 가톨릭 교회는 준비되어 있는가?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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