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침묵 속에서 들음의 행복 깨달아
독서→묵상→기도→관상
사는 것이 힘들다. 삶이 공허하다. 유명한 음식점에서 별미를 맛보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셔보고, 여행도 떠나보았지만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매달 빚 독촉에 시달리는 것에서도 해방되고 싶다. 쉬지 않고 달려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젠 지친다. 행복을 느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행복 갈증’. 끊임없이 우리를 ‘쉼’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품에 ‘푹’ 안겨보는 것은 어떨까. 그 ‘행복의 정석’을 좇아 1월 12일 오후 2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이 있는 장충동을 찾았다.
‘베네딕도회 배움터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 모임’.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서울분원장 김종필 신부가 반갑게 맞았다. 2003년 봄 첫 모임을 가진 이래 연 100여명이 하느님 말씀에서 오는 행복에 빠져 산다고 했다.
3년 개근, 서선혜(마리아.63)씨는 “거룩한 독서를 접할 수 있었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기도이길래….’ 백문이불여일견(百聞以不如一見), 일단 함께 해 보기로 했다.
초대 교회와 유다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거룩한 독서는 3~4세기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됐으며 12세기에 카르투시오회 아빠스 귀고 2세에 의해 △독서 △묵상 △기도 △관상 4단계로 정착됐다. 베네딕도회 배움터는 신자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이 4단계를 7단계로 세분화 했다.
■ 성령을 청하기
김 신부가 직접 녹차와 연잎차 등을 돌렸다. 30여명의 신자들이 따뜻한 차로 마음을 가라 앉혔다. 그리고 성령께 기도했다. “이제 성령을 보내시어 주님께로부터 오는 이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볼 수 있게 해 주소서.”
■ 독서(Lectio)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완벽한 침묵 속에서 고린토전서 12~14장이 봉독됐다. 성경봉독은 총 3회 반복. 첫째 봉독은 본문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관찰 묵상, 두 번째 봉독은 통찰 묵상, 세 번째는 새김 묵상을 위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자들은 외적 내적으로 완벽한 침묵으로 침잠해 갔다.
■ 묵상(Meditatio)
말씀 속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시간. 김 신부는 신자들에게 “성경 말씀은 성경 말씀 그 자체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자신의 기준에 성경 구절을 억지로 끼워 맞춰서는 곤란하다는 것.
■ 되새김(Ruminatio)
마음속으로 말씀을 되뇌이고 또 되새기는 시간. 신자들은 성서 본문 메시지를 각자 현재 상황에 적용했다. 심리 관찰이나 양심 성찰은 금물. 김 신부는 ‘말씀이 스스로를 놀라게 하고 매혹하도록’ 마음을 비우라고 말했다.
■ 기도(Oratio)
말씀에 대한 응답과 대화가 시작됐다. 찬미와 감사, 그리고 이웃을 위한 탄원이 이어졌다. 김 신부는 감수성과 감흥, 그리고 연상 등의 창조적 기능들을 자유롭게 풀 것을 권유했다.
■ 관상(Contemplatio)
눈을 감은 신자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하느님 현존과 일치를 이루는 시간. 이 단계서 신자들은 세상을 하느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체험. 김 신부는“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거니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체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세상에서 실천하기
신자들은 일상을 통해 말씀이 자신과 동행할 수 있도록 결심했다. 말씀과 체험을 소중히 가슴에 안는 모습이었다.
3시간이 지났다. 평온한 마음에 김 신부의 마지막 말이 새겨졌다. “세상에는 말이 넘칩니다. 요즘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말을 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다툼과 불행이 생깁니다. 행복은 듣는 것에서부터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모든 성경말씀이 이루어졌다”(루카 4, 21)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거룩한 독서를 통해 ‘들음의 행복’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독서 참여 문의 02-2273-6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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