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걱정하세요? 기도할 수 있는데”
기도와 삶
교구청에서 일하던 때 교구의 사목에 관한 일들을 맡아 준비하고 치러야 할 일들이 적지 않은데다 처음 하는 일이 서툴러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성격적으로 ‘일 중심’의 생활에 익숙했던 나는 많은 일들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걱정과 완벽하게 일을 해내야한다는 강박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생긴 큰 사건을 처리하려고 서울로 가는 버스 속에서 피곤함과 걱정으로 지쳐 있는 나를 일깨우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에 걸린 현수막에 “왜 걱정하세요? 기도할 수 있는데”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도를 소홀히 하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나를 유지시켜주는 힘은 기도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은 채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욥의 한탄처럼 인생의 고달픔과 고통 속에서 허덕이며 타성과 두려움에 지쳐가는 내 삶이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기도로부터 힘을 얻지 않고 인간적인 능력에 기대어 자신을 소모하는 내 삶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사실 내가 힘겨워하고 있었던 원인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걱정하기 전에 기도하는 일’을 잊어버리고 기도하기 전에 걱정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점점 힘이 빠지고 삶의 여유조차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걱정부터 하고 있는 내 삶에는 주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이 메말라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나는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차올라 마음의 평안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을 무사히 마치고 내려오는 버스 속에서 걱정했던 모든 일들이 모두 잘 풀리게 되어 감사의 기도를 바치며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우선적이고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앞두시고 기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늘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전하는 예수님은 곧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필요한 모든 힘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상은 걱정을 불러일으킬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분이 가시는 곳에는 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그분의 뒤에는 그분을 모함하고 없애버리려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영적으로 충분히 자라나지 못한 탓에 엉뚱한 문제에 휘말리기도 했고, 인간적인 야심과 미숙한 열정으로 주님의 길에 장애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혼란스럽고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갈 수 있었던 힘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의 책임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었고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무게를 견디어 내는 사랑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을 소개하는 첫머리에서부터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열정으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예수님 활동의 중심에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해줍니다. 많은 병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시는 일이 밤늦게까지 계속돼 피곤하고 지치셨을 텐데도 예수님은 먼저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신’ 다음에야 “다른 동네에도 가자. 거기에서도 전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하시며 당신의 일을 계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소홀히 하거나 기도보다 일을 우선시하고 중요시했다면 공생활에서 밀어닥치는 사람들과 일들 속에서 주저앉았을 것이고, 당신을 향한 반대와 비난 앞에서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기도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으면 우리의 활동은 걱정과 두려움의 덫에 걸리게 되고 맙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선한 지향을 지닐 수 없게 되고 우리의 행동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집착해 있는 곳을 향하여 내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올바로 깨닫게 되며 두려움과 의심 없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당당하게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왜 걱정하세요? 기도할 수 있는데…”
김영수 신부 henkys@hanmail.net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http://ww w.yongmeori.com)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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