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의 날에 만난 사람-건국대병원 3대 종교 원목자’
2월 11일은 세계 병자의 날이다. 환자들을 위한 육체적 치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환자가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를 위해 전국의 많은 병원에는 성직.수도자들이 파견돼 환자를 영적으로 돌보는 원목을 펼치고 있다.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독특한 원목실 운영으로 눈길을 끄는 건국대병원 원목실을 찾았다. 신부님과 스님, 목사님이 한 사무실에서 원목활동을 하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병원. 병원 본관 지하 4층에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 원목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고, 맞은편에는 ‘한 지붕 세 종교’ 사무실이 들어서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한 지붕 아래
속된 말로 ‘짬밥’ 순으로 사무실 가족들을 소개하면 먼저 개신교 고필수 목사. 고 목사는 건국대병원의 전신인 민중병원 때부터 활동하고 있다. 1981년부터니까 병원 활동이 벌써 25년째다. 이어 서울대교구 일반병원사목부 김보경(레지나.전교가르멜수녀회) 수녀가 작년 9월 부임했고, 곧바로 법경 스님(대한불교 조계종)이 사무실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마지막 자리는 11월 소선도 신부(과달루페선교회)가 채웠다.
한 지붕 생활은 작년 10월부터 시작됐다. 종교별로 배정된 원목실이 너무 좁다고 생각한 원목자들이 병원에 더 넓은 공간을 요청했고, 병원은 간병인 사무실을 사용하도록 배려했다. 혹시 종교간 다툼(?)이 생길까 염려한 병원은 사무실을 요일별로 나눠서 쓰거나 매달 돌아가며 사용하라고 걱정 섞인 나름의 의견도 내놓았다.
함께 사무실을 사용하자는데 동의한 원목자들. 하지만 경험 없는 한 지붕 생활은 쉽지 않았다. 공간을 셋으로 쪼개는 것부터 책상배치, 종교행사를 여는 것, 원목봉사자 활동까지도 어느 하나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미사와 예배, 법회. 전교와 포교, 선교. 쓰는 말이 다른 것 이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어려웠다. 서로 얼굴을 붉힌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지지고 볶으며 정은 쌓여가
“그런데 싸우는 가운데 정든다고 지지고 볶고 어떤 때는 힘든 적도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제는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살아갑니다.” 법경 스님의 말처럼 부침이 많았던 만큼 정도 많이 들었다.
원목자들은 매달 한 번씩 식사를 겸한 모임을 갖는다. 함께 생활하며 겪었던 어려움, 타 종교 원목자에게 바라는 점, 사무실 공동사용에 있어 개선돼야 할 것, 병원에 요청할 점을 허심탄회하게 나눈다. 세 종교의 나눔은 원목이 보다 활발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병원 각 층마다 종교 소개 리플릿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도 모임의 수확이다. 세 종교가 의견을 모아 병원에 건의하니 원목실의 입김도 훨씬 세졌다.
“병동을 돌다가 종교가 다른 환자가 있으면 꼭 메모해서 스님이나 목사님께 전해드려요. 그분들도 똑같이 영적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잖아요.”
소신부 뿐 아니라 법경 스님도 고목사도 마찬가지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있으면 꼭 종교를 물어보고 사무실로 돌아와 해당 종교 원목자에게 알린다.
“천주교 신자인 한 환자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해요. 신부님은 목사님 칭찬하고 목사님은 스님 칭찬하고, 서로 챙겨주고 돕는 모습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데요.”
화합하는 모습이 환자 뿐 아니라 병원 의료진과 교직원 등 병원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고목사의 말이다.
한걸음 양보, 환자 먼저 생각
“우리 세 종교는 기도 의식도, 방법도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서로가 한걸음씩 양보하고 환자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세 종교가 한 걸음씩, 세 걸음 뒤로 물러서면 환자는 세 배 큰 돌봄을 받고 영적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원목자들은 지난 3개월간 가슴 깊이 체험하고 있었다.
사진설명
소선도 신부, 법경 스님, 김보경 수녀가 활짝 웃고 있다. 부처님의 자비를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법경 스님, 웃는 모습으로 환자들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소신부, 원목자들이 돕고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김수녀의 모습이 건국대병원 원목실의 밝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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