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월 25일 교황으로서의 첫 회칙을 발표했다. 3회에 걸쳐 새 회칙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아가페-에로스의 올바른 균형을”
이웃 사랑은 개인·교회전체 의무
당파·이념 탈피한 자선활동 강조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God Is Love)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신앙교리성 장관을 포함한 교황청 관계자들까지도 놀라움을 표시했다.
교황이 새로 선출돼 처음으로 발표하는 회칙은 대개 그 교황의 통치 스타일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런데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 교회의 가르침에 엇나간 이들과 사상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입장을 견지했던 모습을 떠올리던 이들에게 ‘사랑’을 첫 회칙의 주제로 삼은 것은 적잖은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회칙 발표 후 이어진 반응을 보면, 사랑이라는 주제의 이 회칙이 이 시대에 얼마나 적절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가장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비범하고 심오한 내용을 이 회칙은 담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과 교회 생활의 정수
포콜라레 운동의 창시자인 끼아라 루빅 여사는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말은 오늘날 예수님께서 가장 하고 싶어 하시는 말일 것”이라며 “사랑은 교회의 본질 안에 각인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새 회칙은 교회 전체, 나아가 교회 밖에까지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올 것”을 기대하며 “사랑으로 재발견되는 하느님은 온 세상을 매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사랑’은 신앙과 교회 생활의 정수(精髓)가 아닐 수 없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인 레나토 마르티노 추기경은 “이 회칙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정수를 세상에 보여준다”며 “하느님은 사랑(charity)임을 상기시킴으로써 교황은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으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신학적·사회적 가르침
교황의 첫 회칙은 이 시대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는 학자로서의 면모와 함께 깊은 영적 통찰력을 겸비한 심오한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주교회의 의장 윌리엄 스킬스타드 주교는 새 회칙에 대해 “그리스도교적 사랑과 교회 생활 안에서 사랑의 위상에 대한 심오한 성찰”로 불렀다.
교황청 ‘사도들의 모후’ 대학 학장인 토마스 D. 윌리암스 신부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그리스도교적 사랑에 대해 신학적 성서적 접근을 하고 있다”며 ‘신학적’(theological) 회칙이라고 불렀다.
한편 베트남의 반 투안 추기경의 이름을 딴 국제 반 투안 사회교리 연구소장인 스테파노 폰타나 교수는 새 회칙이 “교회의 변하지 않는 관점에서 현대의 사회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에 ‘사회 회칙’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노동헌장’을 반포한 레오 13세의 “정의는 사랑(charity)을 요구한다”는 권고를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랑의 다양한 차원들
회칙은 ‘사랑’의 다양한 차원들을 일깨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사랑’이라는 말은 극도로 오염되고 왜곡되어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 교황의 지적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이타적인 자기 헌신이나 희생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도 전혀 별개의 것이 되어버림으로써 그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이렇게 퇴색된 사랑에 그 본래의 광채를 되돌려 줌으로써 우리의 모든 삶이 사랑으로 빛을 받고 모든 사람들이 올바른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이 회칙을 발표했다고 말하고 있다.
회칙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제1부는 “창조와 구원 역사 안에서 사랑의 일치”를 논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에로스’로 불리운 남녀 간의 사랑이 신약 성경에서 ‘아가페’, 즉 봉헌하는 사랑으로 그 개념이 발전됐다.
교황은 여기에서 에로스와 아가페의 올바른 관계, 조화와 균형의 회복을 강조한다. 즉 ‘에로스’는 인간이 ‘황홀경 안에서’ 신적인 것을 지향하도록 인간을 드높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에로스와 아가페는 올바른 균형을 이룸으로써 사랑의 참 본질이 실현된다.
그리고 가장 완전한 균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현됐으며, 우리는 성찬례에 참여함으로써 예수님과 결합되고, 동시에 다른 모든 사람들과 결합됨으로써 한 몸이 된다.
공동체적 사랑의 실천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의장 폴 코르데스 대주교는 교황의 새 회칙에 대해 “교회의 사명에 대해 매우 적절하고 결정적인 문헌”이라고 언급하면서 “확고한 신학적 바탕이 없으면 교회의 원조기구들은 교회와 멀어져 단순한 비정부기구(NGO)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회칙의 두 번째 부분인 제2부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의 사랑의 실천’은 바로 이 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회칙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웃 사랑은 모든 개별 그리스도인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자선 활동을 통해 삼위일체의 사랑을 반영해야 하는 교회 공동체 전체의 의무이기도 하다”고 전한다. 아울러 그리스도교의 자선 활동은 당파나 이념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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