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곧 신앙”
매일 새벽·오후 두차례 모여 함께 기도
공소건물 붕괴 직전…전통도 사라질 듯
슬레이트 지붕이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위태로워보였다. 푸석한 벽은 툭 치면 넘어갈 듯 흔들거렸다.
전북 정읍 산내면 능교리 신기마을 604 능교공소. 조심스럽게 들어선 공소 안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붕괴 위험 때문에 벽에는 못질 하나 할 수 없다. 비가 오면 공소 안이 금새 물바다가 될 정도로 지붕은 허술하다. 난방은 엄두도 못낸다. 지붕에 쌓인 눈이 녹아 공소 안으로 모두 흘러 내리기 때문이다.
신자 수 50여명. 경운기 하나 기운 있게 부릴 사람 없다. 대부분 나이 60을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들. 가진 것도 없다. 대부분 정부 지원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신앙마저 가난한 것은 아니다. 공소에는 하루 두 번, 새벽 5시30분과 오후 2시30분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번은 전례를 위해, 한번은 성체 조배를 위해서다.
“일과 기도가 일상이 된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능교공소를 관할하는 신태인본당 김봉술 신부는 ‘교우촌 영성’을 이야기 했다.
“순교자 영성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우촌 영성이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가난하면서도 함께 기도하고 평화롭게 살았던 교우촌 영성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능교공소가 사라지면 이제 그 교우촌 영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윤기현(베드로.65) 공소회장이 옆에서 맞장구를 친다. “지금이야 세례나 견진을 쉽게 받을 수 있지만 옛날에야 어디 그랬습니까. 과거에는 신앙 따로 생활따로가 아니라 생활이 신앙 자체였습니다. 신앙이 없으면 당장 죽을 사람들 처럼 그렇게 살았지요.”
공소 사람들은 ‘신앙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전 공소회장 윤기남(바르톨로메오.64)씨는 “인근에 김대건 신부님 동생 김난식 프란치스코와 조카 김현채 토마스의 묘소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150여년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 곳으로 피신해 오면서 자연스레 교우촌이 형성됐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공소 신자들은 40~50년전을 기억해 냈다. 이 지역에 세워진 공소는 모두 70여개. 신자들은 대부분 담배농사와 고구마 재배 등으로 근근이 끼니를 때울 정도로 가난했지만 신앙열은 남달랐다. 신부님이 공소에 오시는 날이면 남자들은 멀리 50여리 길을 걸어가 신부님을 마중했고 여자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내어와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공소는 7개 정도만 남아있다. 이화동, 문수동, 원덕리…. 공소회장이 그동안 사라진 공소와 교우촌 이름을 나열했다. 공소회장은 끝내 그 이름을 모두 기억해 내지 못했다.
김봉술 신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이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의 전통을 누가 이어가겠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오후 2시. 교우촌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해온 익숙한 일인 듯 모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묵주의 기도와 성체 공경기도가 이어졌다. 1시간 30여분 후. 건물 밖으로 나오는 교우촌 사람들의 얼굴 하나 하나에는 순박한 웃음이 가득했다.
※능교공소 후원문의 063-571-8201 김봉술 신부
사진설명
▶오후 2시30분 성체조배하러 모인 신자들
▶기도 후 환하게 웃고 있는 신자들.
▶붕괴 위험에 처한 능교공소
기사입력일 : 2006-03-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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