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긋고 시합에 나서”
고교 전국대회 우승
누구나 그렇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때는 고교시절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정다운 얼굴, 한여름에 운동장을 뛰면서 숨이 턱에 찼던 순간, 찬바람이 살을 에는 겨울, 힘들게 계단을 오르내리던 일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1978년 고교진학을 앞두고 나는 스카우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무등중학교 선수로 전국대회를 제패하자 우리팀 선수들을 확보하기 위해 연고지인 광주의 2개 고등학교가 달려든 것이다.
나는 원래 광주상고로 진학할 예정이었다. 나를 포함해 동료 5명을 몽땅 받아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당신이 원하던 학교는 광주일고였다. 이 사실을 안 광주일고도 5명 모두를 신입생으로 받아들겠다고 했다. 그덕에 나는 진로를 바꿀 수 있었다.
광주일고에 입학했을 때 우리 학교 마운드는 이상윤, 방수원 선배가 지키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비친 두 선배는 하늘 그 자체였다. 이상윤 선배는 총알처럼 빠른 공으로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고 4번 타자까지 도맡았다. 한마디로 야구천재였다. 방수원 선배는 컨트롤과 변화구가 아주 뛰어났다. 나는 언제나 저 선배들처럼 던질 수 있을까? 선배들이 연습피칭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었다.
시합전 꼭 고해성사 봐
그렇게 1년이 흘렀다. 1979년, 내가 2학년이 된 뒤 우리학교는 처음으로 전국대회 4강에 들었다. 앞서 말한 선배들이 졸업하고 내가 마운드의 주전투수가 되고나서는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3, 광주사람이라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1980년의 해가 떠올랐다.
당시 고고야구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지금의 한국 프로야구가 있게 한 뿌리였다. 전국대회가 벌어지면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뜨거운 성원과 함성이 서울 동대문구장에 가득했다.
매년 고교야구는 초봄에 벌어지는 대통령배대회와 함께 열렸다. 고3이 되면서 전국에 군웅할거하는 명투수들의 이름이 귀에 들렸다. 천안북일고 이상군, 중앙고 안언학, 명지고 정삼흠…. 최고의 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뛰어 넘어야 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선수시절부터 한가지만은 꼭 실천하라고 당부하셨다. 시합이나 연습에 앞서 항상 하느님께 화살기도를 바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시합에 등판하면 자연스럽게 성호를 긋고 하느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부터 하게 됐다. 또 한가지. 나는 늘 시합전 고해성사를 보았다. 어머니의 바람도 있었지만 내가 지은 죄를 하느님께 고하고 시합에 임하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힘이 더 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해 봄 우리학교는 마침내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다. 5년전 강만식, 김윤환 선배가 우승을 차지한 뒤 다시 맞는 호남야구의 경사였다. 응원나온 동문들과 광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온 선후배들의 환호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나는 우승의 주역으로 최우수상도 받았다. 시즌 첫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광주로 내려갔다. 카퍼레이드도 벌였다. 지금도 그날의 감동은 내 가슴속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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