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동체로의 영성 심화
동아시아의 영성과 문화 전통 속에서 한국 신학을 연구하면서 ‘미션’을 사람들 사이의 일로 보는 데서 그쳐서는 안되리라는 것을 절감하였다. 하느님의 생명의 다스림을 그분의 온 창조계 사이의 ‘상호 존중과 섬김과 연대’의 지평에 통합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생태와 영성의 시대
최근에 인간을 포함한 ‘온 창조물 사이의 상호 미션(missio inter creaturas)’이라는 개념을 발굴하여, 이 시대의 생태 영성과 신학의 전망을 진술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는 다름의 풍요와 공명의 지평 확장을 검토하는 맥락에서 이 비전을 소개하기로 한다.
현대 과학에 힘입어서 하느님의 생명권이 그분의 손길이 닿은 모든 창조계로 확장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온 창조계를 포용하는 세계상을 직시하여 여기에 부합한 신학과 영성 비전을 형성하는 것은 이 시대 그리스도 공동체의 한 핵심 과제이다.
이러한 사명에 부응할 때 인간 중심으로 좁혀졌던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의 스펙트럼을 보다 더 건강하게 회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리하여 온 창조계가 다시 하느님의 다스림에 조율되어 공명의 지평을 풍요롭게 구현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더욱 아름답게 합창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대 세계의 학문적, 실천적 생태 전망을 우리 교회가 아직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지구 전체를 하느님의 집(oikos)으로 인식하거나 이를 하느님의 생명의 질서에 근거하여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일정하게 한계를 드러낸다. 하느님의 집안을 아직도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자연을 개발하고 정복해 갈 대상으로 보는 풍조가 퍼져 있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그동안 서구와 아시아는 물론, 한국 신학계에도 자연을 대상화하면서 인간 중심의 오만과 독선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나름대로 자각, 비판해 왔다. 그리하여 자연까지도 하느님의 생명 공동체로 맞아들이는 영성의 심화를 이루고자 애쓰는 중이다. 이런 노력에 힙입어 21세기가 생태와 영성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느님의 말씀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느님의 숨결이 닿지 않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어떤 것도 아름다울 수 없다. 예수님이 들의 백합 이야기를 통하여 가르치시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손길에 의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신뢰이다. 하느님의 살리시는 손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 겨자씨 이야기 역시 하느님의 다스림을 가르쳐 주는 매우 중요한 매개이다. 이 비유는 그 작은 것조차 우리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깨닫게 하는 스승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계시한다.
창조물 사이의 상호 사명
구약성서에서는 특히 지혜 문학이 주목된다. 이 작품들은 모든 사람이 알고 또 살아가는 자연의 이치들을 매개로 하느님의 생명의 질서와 복된 소식을 깨달을 계기를 열어 준다. 이를 통하여 창조물간의 상호 배움과 교화가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다스림을 익히고 실천하는 풍요로움이 구현된다. 여기에서 하느님이 당신의 말씀으로 존재하게 하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 사이의 상호 사명’이 드러나게 된다.
이제 하느님의 총체적 생명의 다스림 안에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인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모든 생명체도 서로의 생명을 풍요롭게 하고 치유하며 생기나게 하는 동지요 이웃으로 들어서기에 이른다. 하느님의 살리는 일 안에서 발생하는 이런 이웃과 생명 공동체의 지평 확장이 현대의 생태 영성이 낳을 가장 아름다운 결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온 생명의 공동체를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 받아안는 열린 지평에서 다종교 문화 현상에서 오는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할 신학과 영성과 사목의 비전을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하느님의 창조의 풍요와 구원의 폭과 깊이를 하느님 찬양으로 이어가면서, 온 창조계의 공명의 지평을 보다 더 아름답게 확장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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