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웃 사랑’은 불가분 관계
성찬례에 드러난 예수님 사랑은
아가페-에로스 균형의 참 모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와 관련해 최근 발행된 이탈리아의 한 가톨릭 잡지 ‘파밀리아 크리스티아나’(Famiglia Cristiana)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잡지는 이탈리아에서 매주 100만부 이상 발행되는 대중적인 매체이다.
하느님 사랑·이웃 사랑
교황이 이 잡지에서 직접 말한 바에 의하면, 회칙의 첫 번째 목적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이고, 두 번째 목적은 “낯설고 심지어 마음에 들지도 않는 우리의 이웃 조차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교황은 여기에서 회칙의 내용이 ‘상당히 어렵고 신학적’임을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회칙을 읽기 시작하면 우리는 곧 이 회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매우 구체적인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매우 심오한 철학적, 신학적 성찰로 여겨지는 교황의 이 회칙이 실제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우 자주, 지극히 일상적으로 접하는 구체적인 삶의 상황을 다루고 있음을 교황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과 일상 삶을 살아가면서 과연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며, 우리는 그 분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또한 성당에 나가서, 혹은 우리 이웃이나 직장에서 결코 내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이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곤 한다.
교황은 심오한 신학적,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이러한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응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 즉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교황은 “그렇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확언한다. 그 이유는 “하느님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먼 곳에 머물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먼저 사랑을 실천하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려 우리가 사랑의 응답을 하도록 이끄신다.”
두 번째 질문, 즉 “우리가 우리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교황은 확실하게 대답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친구이고 그리스도의 친구라면,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비록 우리가 가끔 그분에게서 눈을 돌리고 다른 기준에 따라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하느님과의 우정이 우리에게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이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의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사랑은 의지·지성의 행위
교황은 참된 ‘에로스’의 모습이 온전하게 완성될 수 있도록 해주는 정화와 성숙의 여정을 강조한다. 교황은 사랑이 단지 느낌에 그치지 않음을 지적한다. 사랑은 또한 의지와 지성의 행위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감성뿐만 아니라, 의지와 지성에 호소하며, 우리는 우리의 모든 마음과 영혼을 통해 그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사랑을 갑자기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성숙해지며 점진적으로 사랑을 배워나간다.
‘창조와 구원 역사 안에서 사랑의 일치’라는 제목을 가진 회칙의 첫 번째 부분은 바로 이러한 교황의 설명으로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42개항으로 구성된 회칙 중에서 머리말 1항과 다음의 2항부터 18항까지가 이 부분이다.
회칙은 2항에서 우선 용어의 문제를 지적한다. 즉 사랑이라는 말은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자주 남용되고 있는데, 사실 이는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다. 그 중에서도 육신과 영혼이 결코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는, 고대 그리스에서 에로스로 불린 남녀의 사랑은 사랑의 전형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사랑’의 개념이 더욱 심오하게 발전돼 ‘에로스’라는 말 대신에 봉헌하는 사랑을 나타내는 ‘아가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과거에 한때 부정적인 의미에서 에로스와 모든 육체적 사랑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에로스는 창조주께서 인간 본성 안에 심어준 것으로 그 본래의 품위를 잃고 순전히 ‘섹스’의 차원으로 전락해 상품화되는 일이 없도록 단련되고 정화되고 성숙돼야 한다고 회칙은 강조한다.
신앙에 따르면 인간은 정신과 물질이 결합된 존재이다. 에로스의 문제는 몸과 영혼이 완전히 조화를 이룸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이때 사랑은 참된 ‘황홀경’에 이르는데, 이는 순간적 도취가 아니라 ‘나’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어주는 자유로 나아가 자신과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는 그러한 것이다. 이처럼 에로스는 황홀경 안에서 신적인 것을 지향하도록 인간을 드높일 수 있다.
에로스-아가페의 조화를
궁극적으로 에로스와 아가페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 둘이 균형을 이룰수록 사랑의 참 본질은 더욱 잘 실현된다. 갈망인 에로스는 다른 이에게 다가가 다른 이의 행복을 추구하고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내어줄 때 아가페가 달성된다.
가장 완전한 에로스-아가페의 형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예수는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가장 숭고한 사랑을 드러냈고, 성찬례를 통해 이러한 봉헌 행위가 지속되게 했다. 성찬례 안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께 결합시키며, 우리는 성찬례에 참여함으로써 예수, 그리고 다른 모든 이와 결합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모두 ‘한 몸’이 된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참된 융합을 이루게 된다. 이 이중 계명은 하느님의 ‘아가페’와 만남으로써 단지 하나의 요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명령’이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통해 하느님께서 몸소 사랑 실천의 모범을 보여주었듯이 우리들도 이웃과의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교황이 일반알현 중 지체장애인을 만나고 있는 모습.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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