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이름 알린 감동의 날
고려대로 진학
열심히 한만큼 실력도 늘었다. 고교 3학년 봉황기 대회에서는 경기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내가 투수생활을 하는 동안 달성한 두번의 노히트 노런 중 첫번째였다.
졸업을 앞두고 많은 대학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나를 탐내는 팀은 수두룩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곳은 한양대학이었다. 고교시절 종종 광주로 내려와 내 투구폼의 장단점을 지적해줬던 김동엽 감독님이 계셨던 한양대가 스카우트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나도 한양대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당시 많은 선수들이 가고 싶어 하던 고려대나 연세대는 명문이긴 하지만 선배들의 ‘기합’이 심하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에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이상하리만큼 고려대에 마음이 끌리셨던 모양이다. 어느날 최남수 고려대 감독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다음날 광주에 내려온 최감독님은 아버지와 만났다. 첫 대면에 그의 인상이 마음에 드셨던 아버지는 “우리 아들 잘 부탁합니다”고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1981년 나는 고려대에 입학했다.
감동의 82년 세계선수권대회
1982년 9월 15일은 내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일본과 결승전이 벌어지던 날이었다. 잠실구장에서였다. 당시 고려대 2학년, 내 나이 19세였다.
강심장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던 이 시합의 선발등판은 무척이나 떨리고 긴장됐었다. 당시는 도대체 어떻게 공을 던졌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하지만 매 이닝 매 타자를 상대할 때마다 “하느님 도와 주십시오. 제게 힘과 용기를 주십시오”하며 열심히 화살기도를 바쳤던 것은 생각난다.
2-0으로 뒤지다 기어코 2-2 동점을 만들어 놓은 8회말. 당시 동국대 4학년이던 한대화 선배가 역전결승 3점 홈런을 터뜨렸다. 관중석뿐만 아니라 덕아웃도 승리의 감격에 취해 아수라장이었다.
지고 있었지만 끝까지 주님을 믿고 시합을 포기하지 않았던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9회초 투아웃, 마지막 타자를 내야플라이로 잡는 순간 글러브를 하늘로 내던지고 껑충껑충 뛰었다. 내 야구인생에 있어 최고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에 ‘선동열’이란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알린 날이기도 했으니 그 감격은 배로 더했다.
사실 나는 어렵사리 대표팀에 뽑혔다. 당시 최동원, 김시진, 임호균 선배 등 쟁쟁한 투수들이 국가 대표 마운드에 포진해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일이라곤 거의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대표팀 마운드에 우뚝 설 때가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찾아온 기회,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전 미국전과 대만전에서의 호투는 대표팀에서 내 위상이 완전히 바뀌는 전환점이었다. 우승이 걸린 일본과의 최종전에 내가 선발로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두 경기에서의 쾌투 덕이었다.
나는 아마야구시절부터 여러모로 행운아였다. 나가는 대회마다 상 하나씩은 반드시 받았다. 이 모든 영광은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뒤에서 열심히 아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 덕분이었다.
기사입력일 : 2006-02-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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