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중
차이 없이 공명 없다. 공명은 너의 다름을 존중할 때 비로소 발생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과 영성과 사목 비전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름을 존중
이 공의회는 자기와의 대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사이의 대화, 이웃과의 대화, 지역 사회와 문화와의 대화를 설득한다. 또한 나라와 나라 사이의 대화, 그리고 세상 만물과의 대화를 가톨릭 신앙인은 물론 온 세계 만민에게 설득하고자 한다. 공의회는 이러한 대화 차원들을 하느님의 생명의 다스림과 그리스도의 구원 사명에 통합하려 하는데, 이것은 너의 다름을 존중하지 않고는 도달할 길이 없다.
바로 이런 다름의 존중 정신에 근거하여 ‘이방 민족들을 향한 미션(missio ad gentes)’에서 ‘민족들 사이의 미션(missio inter gentes)’을 거쳐서 ‘창조물들 사이의 상호 미션(missio inter creaturas)’으로 나아가는 공명의 지평 확장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너의 다름을 존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를, 자기의 정체성을, 자기의 전통을 망각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기를 알면 알수록, 자기 정체성과 전통을 바르게 존중하고 사랑할수록, 다른 사람, ‘너’에 대한 존중과 사랑은 깊고 성숙해진다.
요즘 한국은 물론 전세계 교회가 신영성운동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몇몇 뜻있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과 이른바 ‘신영성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응답’을 주제로 1년간 연구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이 모임을 위한 강연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신영성에 대한 교회의 기본 입장 역시 너의 다름에 대한 올바른 존중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투신을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교회는 현대의 다양한 영성적 욕구에 응하여 형성된 다른 목소리들에 대한 존중과 대화의 원리 위에서 자신의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건강하게 지켜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톨릭 영성에서는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자연과 우주를 존중하는 것과 그것을 신격화하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한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하느님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생명과 구원의 지평 안에서 돌보고 그것들과 연대하는 것이 가톨릭 생태 영성의 핵심을 구성한다. 하느님의 창조의 관점에서 그분의 생명의 다스림에 보다 더 충실하게 온 창조물의 구원을 매개하는 데 가톨릭 생태 내지 자연 영성의 올바른 방향과 목표가 놓여 있다. ‘창조물들 사이의 상호 미션’이란 이러한 사명을 개념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실로, 하느님의 돌보시는 마음을 닮아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귀 기울여 그들을 돌보는 것, 이것이 생태 영성의 시작이자 끝이다. 자연을 하느님과 무관한 형태로 이해하고 돌보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생명의 질서에 근거하여 그 모든 것의 기쁨과 신음을 온몸과 마음과 영으로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가톨릭 생태 영성의 구현 방식이다.
창조물과의 연대
이같은 생태 영성이 구체적으로 생활 속에서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결실을 거두며 연대의 지평을 확장해 갈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에서 내린 빗방울 하나하나가 이 세계의 바닥, 바다에서 큰 물결을 이루듯이, 당신을 낮추셔서 우리의 바닥이 되어 주신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온생명을 살리는 영성 운동을 아름답게 구현해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창조물 자연을 신격화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같은 신격화는 도리어 자연에 대한 일그러진 종속이나 우상화를 불러들이는 것은 물론 인간 야욕의 도구로 오용될 수조차 있다. 이런 역기능이 유발될 때, 거기서는 다름을 존중한다면서 도리어 다름에 갇힌 채 또다른 파괴와 폭력을 조장할 수도 있다.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일그러진 생태-자연 운동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병리적 혹은 폐쇄적 다원주의가 드러내는 너에 대한, 다른 존재들에 대한 폭력성 역시 자기의 차이를 우상화한 데서 비롯된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공명은 각 존재의 다름과 고유한 정체성에 대한 ‘동시 존중’을 모체로 생성된다고 할 것이다.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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