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변화
으리으리하게 높은 빌딩 옆에 한 젊은 거지가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언제 거기에 왔고, 어디서 왔는지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 건물을 나서던 노신사가 그를 보고 어려웠던 자신의 지난날을 생각하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아직 나이도 젊은이가 이렇게 지내서야 되겠는가? 살다보면 이런 때도 있고 저런 때도 있는 법이지. 나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일을 찾아 열심히 살다보면 길이 열리는 법이라네. 자네도 어떤 방법으로든 새 삶을 한 번 다시 시작해보게” 하고는 지갑에서 동그라미 여러 개가 있는 수표를 꺼내 깡통에 넣어 주었습니다.
다음날 그 젊은 거지는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새 삶을 찾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거지는 다시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땅바닥에 깔던 낡은 거적 대신 페르시아산 카페트를 깔고, 구걸하던 쇠 깡통에 금도금을 해서 황금 깡통을 만들어 다시 그 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그는 정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변해야 산다’는 말은 요즘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구호처럼 되어있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겉모습만 바뀜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정치를 하는 이들은 개혁을 외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내용은 변하지 않은 채 무늬만 바뀐 개혁 앞에서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듯합니다. 큰집을 사서 새로 꾸미고, 좋은 차를 타고, 명품으로 단장을 하고 나서지만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공허함과 삶의 권태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참된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 속에서 열매 맺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는 것”은 새 옷도, 헌 옷도 모두다 누더기로 만들 뿐입니다.
사순절을 앞두고 우리가 묵상하는 복음의 말씀은 진정한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커다란 울림이 되어 저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새 술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이라면 새 부대는 그것을 담는 우리 자신의 삶입니다. 새 술이 낡은 가죽부대에 들어가게 되면 술이 발효되어 부풀어 오르게 되고 낡은 가죽은 터지게 되어 술도 부대도 다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된 술은 더 이상 발효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낡은 가죽 부대 안에 담아 두어도 부풀어 오르거나 터지지 않습니다. 새 술이 발효되는 것은 더 좋은 술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 변화를 감당해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더 이상 그 부대에 담아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도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거리라고 합니다. 머리로는 알아듣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아는 것보다 이해하는 것이 귀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귀합니다. 안다는 것은 머리로 하는 일이고 이해한다는 것은 가슴으로 하는 일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삶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신앙의 열매입니다. 참된 변화의 삶은 회개의 삶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머리로는 알아들으면서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진정한 변화의 삶을 열매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우리를 살리시고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진 인생의 추천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나날이 새로운 삶으로 변화해 나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욕망 속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영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변화를 향해 나아갑니다.
“산다는 것은 변하는 것이고, 완전하다는 것은 여러 번 변하였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뉴먼 추기경의 말씀처럼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삶에 활기를 불어 넣으시고, 사랑의 마음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삶을 결심하며 다가오는 사순절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henkys@hanmail.net
기사입력일 : 2006-02-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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