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가 처음 묻혔던 곳 새롭게 확인
전문-한국천주교회는 103위 성인 탄생의 감격 이후, 제2의 시복시성 추진 운동의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난 2002년 봄 주교총회를 기점으로 주교회의를 주체로 시복시성 통합추진을 결의한 후 124위의 ‘하느님의 종’을 선정, 이분들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시복 재판을 가진 바 있다.
그 마지막 단계로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올 한 해 동안 순교자들과 관련된 곳들을 직접 답사, 확인하는 현장 조사를 실시한다. 가톨릭신문은 현장 조사를 동행, ‘하느님의 종’들이 남긴 흔적들을 직접 밟아가며 그분들의 신앙의 향기를 전하고, 시복시성을 향한 한국 교회 신자들의 마음을 모아가고자 한다.
10회에 걸쳐 현장조사
현장조사는 총 10회에 걸쳐 6월초까지 매월 한 두 차례씩 실시된다. 지난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3일간, 그리고 17일에는 그 첫 작업으로 마산교구와 안동교구 지역의 현장 조사가 이뤄졌다.
이번 조사에서는 우선 순교자들의 묘지와 생가, 순교한 감옥터 등을 방문해 구체적인 순교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과 함께 아직까지 시복시성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공적인 예배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14~16일 마산교구 조사
2월 14일부터 16일에 이뤄진 마산교구 지역 현장 조사는 박대식, 신석복, 정찬문, 윤봉문, 그리고 구한선 등 5명의 순교자와 관련된 현장 조사가 이뤄졌다.
대개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124위 순교자들 중에서 무덤이 보존되어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 조사가 실시된 5명의 순교자들의 무덤은 현재까지 잘 보존돼 있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큰 수확을 얻었다. 정찬문, 윤봉문 순교자가 직접 순교했고, 구한선 순교자가 죽음 직전까지 매질 당한 장소인 진주 감옥터를 찾았다. 또 제주교구의 순교자 김기량(펠릭스)이 순교한 장소인 통영 감옥터를 정확하게 확인했고 정찬문 순교자와 구한선 순교자가 순교한 직후 처음 묻혀 있었던 장소를 새롭게 확인했다.
첫 날인 14일에는 김해시 진례면 다곡리 마을 뒷산 박대식(빅토리노, 1812~1868) 순교자의 무덤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그는 1868년 무진박해 때 형과 함께 붙잡혀 혹독한 형벌 끝에 그해 8월 27일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됐다. 가족들이 시신을 고향으로 모셔와 현재 위치에 매장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됐다.
같은 날 조사가 진행된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 진영천주교 묘원에는 신석복(마르코, 1828~1866) 순교자의 유해가 묻혀 있다. 밀양에서 태어나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돼 대구로 압송됐고 38세로 감옥에서 치명했다. 유해는 그의 아들이 대구에서 모셔 왔고, 선산에 모시지 못하고 한림정 뒷산의 노루목에 안장됐다가 1975년 현재 위치에 이장됐다.
둘째 날인 15일에는 정찬문(안토니오, 1822~1867)과 윤봉문(요셉, 1852~1888) 순교자 현장 조사가 있었다.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 중촌마을에 유해가 모셔진 정찬문 순교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잡혀 진주 감옥에 갇혀 석달 동안 심한 고초 끝에 같은 해 12월 20일 45세의 나이로 참수됐다. 순교 후 사촌 형제들이 시신을 거두어 허유고개 비탈에 모셨고 그 후 현재 위치에 안장됐다. 윤봉문 순교자는 부산 동래 출신으로 1888년 봄 옥포에서 체포돼 통영으로 압송됐고, 다시 진주로 이송, 음력 2월 감옥에서 순교했다. 당시 나이 40세.
16일에는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 가등마을에 위치한 구한선(타데오, 1844~1866) 순교자 무덤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그는 리델 신부의 복사로 활동하다가 병인박해 때 붙잡혀 매질과 고문을 당한 뒤 돌아와 7일 만에 후유증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23세. 유해는 고향 인근에 묻혀 있다가 1976년 현재 위치로 이장됐다.
17일 안동교구서
안동교구에 대한 현장 조사는 17일에 실시됐다. 대상자는 박상근(마티아, 1837~1867) 순교자. 경상도 문경에서 아전(하급관리)을 지낸 그는 관청에서 일을 했기에 신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는 병인박해 당시 칼래 신부를 문경읍에 있는 자신의 집에 숨겨 주는 등 교회에 기여하다가 1867년 30세의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순교 후 가족들이 시신을 찾아 고향인 문경 마원에 안장했다.
■인터뷰/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주교
“깊은 관심과 기도 필요”
124위 현장조사 6월이면 마무리
문서 제출까지 1년가량 더 소요
복자.성인 선포 전 공적 경배 금지
▲많은 과정을 거쳐 드디어 현장조사에 돌입했습니다. 담당 주교로서 소회와 현장조사의 의의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 주교회의가 주체가 되어,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이후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통합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이 2002년 봄 주교총회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어언 5년이 지난 셈이지요. 그 동안 시복시성 대상자 ‘하느님의 종‘ 124위를 선정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선정된 ‘하느님의 종’ 들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하느님의 종’들의 성덕과 순교 사실을 확증하기 위한 시복 재판이 16차례 열렸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역사가들과 신학자, 교회법 학자들이 수고를 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하는 것이 현장 조사인데 순교자들의 출생지와 사신 곳, 순교와 관련된 감옥과 사형 터, 묘소 등을 실지로 답사하고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유적지에 살고 있는 신자들이 순교자들을 참으로 순교자로 인정하고 성인 성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아울러 혹시라도 ‘하느님 의 종’들에 대해 공적 경배를 하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것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교회는‘하느님의 종’을 복자와 성인으로 선포하기 전에는 공적 경배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법 1187조).
앞으로 아직 할 일이 많긴 하지만 지금까지 한 일들이 시간적으로나 일의 성격으로 보아 어려운 일들이었기에, 비교적 힘이 덜 드는 현장조사를 하면서 좀 홀가분한 기분을 느낍니다. 현장조사는 오는 6월이면 끝이 날 예정입니다.
▲현장조사가 끝난 후 다음 과정은 무엇입니까?
- 좀 홀가분한 기분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중요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난 위원장인 저의 느낌이고, 시복시성 추진 실무자들의 일은 지금까지보다 더 많아집니다. 모든 문서들의 정리, 특히 모든 기록들의 영역(모든 기록은 영어로 번역하여 로마 시성성에 제출해야 함) 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아마 1년 가까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성성에서는 제출된 모든 문건을 검토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서 시복시성을 요청하는 건이 많으니까요. 한 가지 예만 들어도, 가까운 일본교회에서도 작년에 188명의 순교자 시복시성을 요청하는 문건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김대건 성인 순교 160주년이며 병인박해 140주년이 되는 올해, 신앙선조들, 특히 순교자들을 본받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십시오.
- 참으로 올 해는 기념할만한 뜻있는 해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2006년에 124위 순교자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이, 우리 나름대로는 일단락을 지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 절차는 겨우 지난 12월에 본격적으로 시작이 된 상태이어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해야겠지요.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은 124위 순교자의 시복시성 못지않게 한국교회를 위해서 큰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인 성녀를 모시는 것은 신자들이 성인 성녀들을 본받는 신앙생활을 하고 그 천상 전구의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선조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이유 역시 후손인 우리들이, 우리와 같은 이 땅에 사시고 순교까지 하신 선조들의 훌륭한 믿음과 성덕을 본받고 그 전구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선조들의 훌륭한 믿음과 성덕을 널리 알림으로써 선조들을 현양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이 시복시성은 우리 후손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교회가 이 시복시성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깊은 관심을 가져 주며 열심한 기도를 바쳐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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