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따뜻한 가슴으로 ‘희망’ 수놓아
‘책벌레 아이’가 ‘교회법 대가’로 "신자 20%되게 해달라" 매일기도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2003년 9월. 정진석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시노드를 마치며 발표한 후속교서 제목으로 ‘희망’과 ‘하느님’을 선택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늘 희망을 말한다. 언론과 인터뷰 할 때는 ‘하느님의 은총’‘기쁨’ ‘희망’ ‘평화’라는 단어가 빠지는 법이 없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 착좌 후 처음 맞는 성탄 대축일에도 “모든 신자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위로를 받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희망’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일생을 걸어온 정추기경의 삶을 되돌아 본다.
■ 태몽을 거스른 아이
태몽도 때로는 틀릴 때가 있다. 1931년 초, 한 여인(이복순 루시아 여사, 1996년 89세 나이로 선종)이 꿈을 꾼다. 앞으로 태어날 아들이 주교가 되는 꿈이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서울 수표동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는 훗날 추기경이 된다.
외동아들로 성장한 정진석 추기경은 계성초등학교(당시 계성보통학교)를 다니면서 당시 명동본당 보좌신부였던 노기남 대주교로부터 교리를 배웠고, 복사로 활동했다. 1942년 노대주교 착좌식 때는 복사로 선발되기도 했다.
추기경은 어린 시절부터 ‘책벌레’로 불렸다. 새벽 미사 복사를 마치면 어머니가 챙겨준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틈만 나면 인근 소공동 어린이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었다. 왕성한 독서열은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중학교 시절 책을 읽고 싶어 우연히 가입한 독서회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접하고 심한 혼돈에 빠진 것. 하지만 1947년 명동성당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윤형중 신부의 사순절 특강을 통해 유물론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인 1950년 서울대 화공과에 입학했다. 동기는 단순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과학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과 동시에 발발한 6.25 전쟁은 ‘과학자의 길’을 ‘사제의 길’로 바꿔놓게 된다.
■ 죽음 체험 그리고 성소
국군이 퇴각하고 북한군 치하에 들어간 서울에서 추기경은 3개월간 숨어 살았다. 수복 후 많은 청년들이 부역자로 의심받아 사살 당했지만, 추기경은 그 위기를 비켜난다. 얼굴이 창백하고 장발이어서 부역을 하지 않고 숨어 다닌 표시가 뚜렸했기 때문이다. 중공군이 다시 내려온다는 소식에 추기경은 그제야 피난길에 오른다.
남양주 덕소를 거쳐, 남한강을 건너, 문경새재, 안동, 의성, 마산, 부산으로 이르는 길. 추기경은 이 길에서 두 번 죽음을 체험한다.
추위로 언 남한강을 건넌 직후였다. 뒤에서 얼음이 깨지며 수많은 이들이 빠져 죽어갔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자 얼음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문경새재를 넘어 안동 지역을 지날 때는 앞서 가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지뢰를 밟아 또 수많은 이들이 폭사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몇분 차이로 생과 사를 오간 추기경은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된다.
마산, 함안까지 피난한 추기경은 이후에도 굶어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부산 범어사에서 국민방위군 사관학교 과정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했고, 이후 두 달만에 미군통역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죽음에 대한 체험이 사제성소의 불씨라면 미군 통역관의 체험은 사제성소를 확정하는 계기가 된다. 통역관으로 근무하며 그 해 6월 25일 로마에서 시성된 마리아 고레띠 성녀에 관한 문고판을 읽은 것이다. 마리아 고레띠 성녀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은 추기경은 전쟁 후 과학자가 되려던 마음을 바꿔 서울대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신학교에 입학한다. 추기경을 사제의 길로 이끌었던 마리아 고레띠 성녀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마리아 고레띠 성녀 시성 20주년인 1970년 6월 25일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 학자의 길
추기경은 신학교에서도 줄곧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학업에 남다른 달란트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추기경은 학자적 이미지에 걸맞게 방대한 독서량으로 유명하다. 교구청 관계자들이 “저토록 책을 많이 읽는 성직자는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왕성한 학구열을 증명해 주는 일화 한 토막. 지난 1995년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라틴어 서한을 완역할 때 추기경은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기도 시간인 6시30분까지 번역작업에 매달렸다. 이러한 학구열은 왕성한 집필로 이어진다.
추기경은 ‘교회법원사’ ‘교회법 해설(전11권)’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 해설’ 등 수많은 교회법 관련 저서와 역서를 집필했다. 그동안 정대주교가 직접 저술하거나 번역한 책은 모두 48권. 61년 사제로 서품된 후 거의 매년 책 한권 씩 낸 셈이다.
■ 모두 이뤄지는 기도
1961년 3월 18일 사제서품식에서 성인호칭기도를 드렸던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당시 한국 천주교 신자수가 1%가 채 안됐는데 추기경은 기도 중에 “한국의 가톨릭 신자수가 10%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그 기도는 지난 2000년에 이뤄졌다. 추기경은 요즘 다시 2020년까지 신자 20%가 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드리고 있다고 한다.
추기경은 중림동본당 보좌신부를 거쳐 성신고 교사로 7년 재직한 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에 진학해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고 1970년 귀국했다. 추기경은 귀국 직후 바로 39세 나이로 주교에 오른다.
추기경은 그날부터 하느님께 ‘청주교구에 사제를 100명 주십시오’라는 청원기도를 드린다. 부임당시 청주교구는 한국인 사제 6명, 미국 메리놀회 사제 20명, 본당이 22개였다. 그로부터 28년 후인 1998년 6월 27일,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청주교구를 떠나던 날, 청주교구 사제는 106명이었다.
■ 새로운 출발
1998년 정진석 대주교 착좌 후 서울대교구는 변화와 쇄신의 시기를 보낸다. 지구중심 사목, 소공동체 운동 활성화, 유아 청소년 청년 사목 활성화, 시노드, 대리구제, 공동사목 실시 등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시도들이 도입, 실시되고 있다. 추기경이 강조하는 신자 3000명당 본당 하나에 대한 구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를 향한 관심과 애정도 계속되고 있다. 추기경의 사회를 향한 관심은 한마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요약된다. 각종 강론과 인터뷰 등에선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세속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이 빠지지 않는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 마다 생명의 소중함, 자율성이 강조되는 교육,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를 강조한다. 북한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서울대교구 최창화 몬시뇰은 추기경에 대해 “추기경님께서 고통받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며 “추기경님은 불의와 진리에 엄격한 자기 기준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한없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고 말했다.
추기경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서울대교구장 착좌 후 미사를 집전할 때 마다 추기경은 신자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장과 성작의 유래, 그리고 숨은 교회사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모두를 이야기할 때는 어김없이 ‘희망’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집시다”. 추기경의 ‘희망’은 현재진행형이다. 추기경이 앞으로 이야기할 ‘2006년 이후 이야기 한국 교회사’가 기대된다.
사진설명
▶1942년 노기남 대주교 주교수품식때 초복사를 섰다.(앞줄 왼쪽)
▶1970년 주교수품식때 모친 이복순(루시아) 여사와 함께.
▶추기경 임명 후 다음 날 주교관 소성당에서.
▶2003년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에 서명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교구 생명의 날 열린 ‘생명의 밤 콘서트’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사랑으로’를 부르며 생명존중의 마음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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