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아끼는 고향팬에게 가거라”
첫 번째 큰 시련
나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을 계기로 메이저리그에 관심을 갖게 됐다. 84년 고려대 졸업반이 되면서 연고구단인 해태로부터 끈질긴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오로지 미국 LA 다저스행에 쏠려 있었다. 그때만 해도 동양인의 입성을 한번도 허용하지 않았던 철벽의 세계였다. 거기에 뛰어들어 자웅을 겨뤄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다저스는 50만달러라는 뿌리치기 힘든 거액 계약금을 제시했다.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의 피칭이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역문제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일부 매스컴에서 내가 해태에 안갈지도 모른다는 보도를 내자 극성 팬들은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그 바람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여관마저 위험에 처했다. 새벽 2시가 넘은 한밤중에 쳐들어와 손님을 쫓아내는가 하면, 돌멩이로 유리창을 깨는 사람들도 있었다.
해태와의 지루한 협상이 이어졌다. 그러다 서로의 견해차를 줄이지 못하고 점차 감정만 격해졌다. 아버지와 나는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고 싶어 한국화장품 입단을 전격 선언했다. 이것으로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병역문제로 미국행이 힘들바에는 차라리 실업팀에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가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의 진로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동안 나를 가운데 놓고 벌어지는 파동속에서 말도 못하고 마음고생을 하시던 어머니가 급기야 심장병으로 쓰러지신 것이다.
내 삶의 중심은 주님
어머니는 애초부터 아들이 먼 객지에서 혼자 떠돌아 다니며 야구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해태팬들의 들끓는 반응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려오는 협박성 전화에 마음이 상할대로 상하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해태로 갈 것을 권유하셨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어머니는 당시 밤낮으로 묵주를 손에서 놓지않고 성모님께 매달리셨다고 한다.
“타대오야, 너를 아끼는 고향팬들을 생각해서라도 해태로 가거라. 하느님께서는 그동안 네가 받았던 사랑과 축복을 고향에서 사용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나중에 미국이나 일본에서 네 실력을 마음껏 펼쳐도 늦지 않을 것이야.”
어머니의 이 한 말씀에 나는 해태구단 사무실로 직행, 입단계약서에 사인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겪은 큰 시련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돈과 명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팬들의 소중함을 배웠다. 특히 어머니의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그동안 베풀어 주셨던 사랑과 은총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비록 주일미사에 자주 빠지는 ‘빵점’ 신자였지만 내 마음엔 항상 그분이 계셨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새로운 열정이 불타 올라 하느님께 약속을 드렸다.
“하느님, 타대오가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지만 당신은 내 삶의 중심이십니다. 최고가 되려 하기 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선수가 되겠습니다. 제게 힘과 용기를 주십시오.”
우여곡절 끝에 85년 해태 유니폼을 입은 나는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했던가. 첫해 후반기 25경기에 출장해 방어율 1위(1.70)에 올랐다. 이듬해부터 나의 전성기이자 해태의 무적 시대가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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