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회개
긴 겨울을 이겨내고 움터 나오는 새 생명들의 기운이 천지에 가득합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이겨내고 나오신 예수님께서 온 세상에 ‘새 삶’을 선포하시는 외침이 들리는 듯합니다.
새 생명이 시작되는 계절에 맞이하는 사순절은 은총의 시기라고 부릅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마음을 바꾸고 삶을 고쳐서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회개의 삶을 열매 맺을 때 사순절은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은총의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우리에게 선포된 복음의 말씀은 ‘거짓 회개’와 ‘참된 회개’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거짓회개는 위선을 낳고 참된 회개는 구원을 열매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를 선포하시면서도 회개한 척 하는 위선적인 외적 표지들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스스로 나팔을 불어 자신의 선행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일,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척하는 일, 단식하고 있다는 표를 내려고 일부러 침통한 행색을 하는 일 따위는 참된 회개가 아니라 회개한 척하는 위선일 뿐이며 그러한 위선자는 자신과 남을 속이고 하느님마저도 속이려 드는 눈먼 사람들이라고 꾸짖으십니다.
채근담에 “악한 일을 하면서도 남이 알까 두려워하면 그 악 속에 오히려 선의 길이 있고, 착한 일을 하면서도 남이 알아주기를 성급히 바라면 그 선속에 악의 뿌리가 있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악을 저지르고서 그것이 악한 줄을 알고 남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 얼마쯤 양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악하면서도 선으로 향하는 길이 있으나, 선한 일을 하였다하여 곧 그것을 남이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그 마음속에 벌써 악의 뿌리가 숨어있는 것이니 이것을 곧 위선(僞善)이라하고, 이와 같은 위선은 예수님께서 가장 경계하신 인간의 태도였습니다.
자신 안에 든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겉꾸미기를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은 자신을 그럴듯하게 꾸며 남의 환심을 사거나 속여서 자신의 만족을 취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겉만 번지레하고 속은 그렇지 못한 사이비한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위선자(僞善者)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위선의 근원과 결과를 준엄하게 폭로하셨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의 거짓을 드러내셨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용서청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의인인 척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폭로하시고 그들의 거짓됨과 완고함을 꾸짖으셨습니다.
위선적인 신앙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낳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체면 때문에 유지하거나, 하느님의 사랑을 자신의 탐욕과 방종을 위해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위선자들을 입술로는 하느님을 공경하여도 마음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나가 있습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라는 신앙행위 자체도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위해서”하는 일이어서 겉치레 형식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위선적인 신앙생활은 하느님을 위하는듯하나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하느님마저도 속이려드는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눈이 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천사와 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이웃을 위해 남 몰래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아도 세상의 맛을 내는 소금과 같습니다.
내 기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은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정성을 다해 바치는 사람들은 이미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 절제하고 희생하며 헛된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거룩한 향기를 품은 사람들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을 향해가는 여정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믿는 사람만이 사순절 동안 참된 회개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속이려는 마음을 바로잡고, 남을 속이려는 마음을 멈추고, 하느님을 속이려는 마음을 돌이켜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나를 의탁 할 때 하느님과 이웃과 내 자신과 화해하는 참된 회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 마음의 뿌리를 다시 주님께로 향하는 때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뿌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에 다다를 때에, 우리의 삶은 소금처럼 드러나지 않아도 사는 맛을 내고, 봄꽃처럼 자랑하지 않아도 고운 삶을 피워내며, 산나물처럼 꾸미지 않아도 그윽한 향기를 품기는 아름다운 삶을 열매 맺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 2)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http://www.yongmeori.com)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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