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의 태양’으로 우뚝
크나큰 축복의 시간
해태에서의 11년간 선수시절은 내게 크나큰 축복의 시간들이었다. ‘무등산 폭격기’, 이 시절 나의 애칭이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무등산과 155㎞의 강속구를 결합해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나는 국내 활동기간 동안 통산 367경기서 146승 40패 132세이브, 방어율 1.20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우승도 6차례나 차지했다. 이중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록은 ‘0점대 방어율’이다. 프로 데뷔 2년째인 86년 0.99를 시작으로 87년 0.89, 93년 0.78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왜 시련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기도와 팬들의 사랑, 많은 동료들이 함께 했기에 큰 어려움없이 극복할 수 있었다. 나는 참으로 복많은 사람이다.
국내에서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던 나는 95년 겨울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해외진출의 기회를 잡았다. 95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 슈퍼게임이 도화선이었다. 나는 구단측에 국내에서 할 만큼 했고 더 늦기 전에 해외로 가고싶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구단의 승낙으로 96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할 수 있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는 해외진출. 아쉽게도 메이저리그행은 아니지만 대학졸업 때부터 바라던 목표가 아니었던가. 나는 우리를 한수 아래로 생각하는 일본야구의 콧대를 꺾어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세워보고 싶었다.
일본서 맛본 좌절 그리고 재기
이러한 나의 바람은 첫해에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일본야구가 한국야구보다 한수 위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여기에 선수의 사소한 습관까지도 놓치지 않는 다른 팀들의 철저한 분석으로 나는 96년 1, 2군을 오르내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성적은 5승 1패 3세이브, 방어율 5.50.
나는 운동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야구선수가 된 것에 대해 후회했다. 엘리트 코스만을 걸었던 내가 처음으로 맛본 큰 시련이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당장 때려 치우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야구장에 나가는 것 조차 너무 싫었다. 긴긴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기도 했다.
프로가 냉혹하다고 하지만 일본야구는 정말 냉혹했다. 내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감독이나 선수들은 내 인사 조차 받지 않았다. 철저히 무시당했다. 팬들과 언론의 비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오기가 발동했다. 이대로 주저앉기에는 그동안 쌓아온 내 야구업적이 너무나 허무했다. 그해 겨울 나는 와신상담의 각오로 명예회복을 별렀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가을 마무리 훈련에 참가하고, 좋아하던 술도 삼가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그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던지고 또 던졌다.
그결과 97시즌 39세이브포인트(1승1패 38세이브)의 빛나는 성적표를 남기고 비로소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올랐다. 이후는 탄탄대로였다. 일본야구에 적응한 나는 98년 32, 99년 29세이브 포인트를 기록하며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 대열에 우뚝 섰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해주었다. 그토록 무시하고 비난했던 구단과 팬들은 나를 우상처럼 아끼고 받들어 주었다. 마침내 일본에 올 때의 포부를 달성했다.
사진설명
1996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후 무참히 깨지며 좌절의 시기를 보냈다. 이후 와신상담의 각오로 열심히 해 일본 재팬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머줬다.
기사입력일 : 2006-03-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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