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자 자유박탈 우려있지만 삶을 존속하는 인간적인 형벌
한국천주교회는 종교인들은 물론,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지난 20여년간 ‘인간 생명권을 국가가 직접 침해하는 형벌제도’인 사형제도의 폐지를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법무부가 사형제도를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사형제도의 폐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
이러한 중요한 시점을 맞아 사형제도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고, 국내 사형폐지운동의 역사와 성과를 일별해본다.
■절대적 종신형제는
정부의 사형제 대체입법 추진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절대적 종신형’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난 2001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온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이다. 2002년 초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위원들의 법무부 장관 면담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절대적 종신형은 그간 사형에 비해 더 가혹할 수 있다는 논리 때문에 종교계 전반의 합의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종신형은 우리나라 형법 체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무기형과 내용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현행 형법에서 무기형이란 수형자가 살아 있는 동안 무제한의 기간 동안 자유박탈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사할 때까지 자유가 박탈되는 수형자가 된다는 의미로 유럽 국가들에서 말하는 종신형 개념과 차이가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 중국 한국 등 동양권의 국가들에서는 종신형 대신에 무기형이라는 용어를 쓰고, 유럽권 국가들은 종신형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무기형을 받은 수형자라도 10년 이상의 형을 살고 재범의 여지가 없으면 가석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대적 종신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면이 남용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무기수도 쉽게 가석방이나 형 면제 등의 형식으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반국민들의 경우 사형제도 폐지와 이의 대안으로서 종신형 도입을 반대해왔다.
교회가 절대적 종신형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반인륜적 범죄가 터질 때마다 사형제도 존치론이 비등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대체형벌로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무기형보다는 더 무거운 형벌이 고려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해온 교회를 비롯한 대다수 인권단체들의 선택은 국민들의 법감정을 감안해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절대적 종신형 도입 주장은 하루라도 빨리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사형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러한 교회의 선택에 힘을 실어준다. 단순히 사형제 폐지 여부를 묻는 설문에는 대체로 찬성 45%, 반대 55%로 사형제 존속 의견이 우세하게 나타나지만 ‘사형제를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51∼53%의 국민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일태(동아대) 교수의 논문은 이러한 결과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허교수가 지난 2000년 10월 사형제도존치론자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형의 대체형으로 가석방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할 경우 사형제도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이 369명이나 됐다. 이는 사형존치론자들 중에서도 약 37%가 사형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 종신형은 주로 사형제도 존치국가에서 사형제도 폐지국가로 전환될 때 많이 이용돼 왔다. 일례로 나치 통치를 경험한 독일은 1949년 헌법인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사형제도를 폐지할 때 절대적 종신형만을 두었으며, 1931년에 사형제도를 폐지한 미국의 미시간주도 사형의 대체형으로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만을 두었었다.
절대적 종신형에 대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사형보다는 근본적으로 더 인간적인 형벌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왜냐하면 사형과 절대적 종신형은 삶과 죽음의 차이이자 오판 시 회복 가능성 여부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의 인권국가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절대적 종신형 도입을 통해 하루빨리 사형제를 폐지해 새로운 생명의 문화를 일궈나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형태 변호사(주교회의 사형폐지소위원회 운영위원장)는 “어떠한 개선의 여지도 희망도 모조리 앗아가는 사형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므로 폐지되어야 한다”면서 “평생을 감옥에서 살더라도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생각하고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는 절대적 종신형 도입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종신형 운용 사례
수형자들의 삶이나 탈출을 소재로 한 영화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종신형’은 서구사회에서 일찌감치부터 뿌리를 내려온 사법제도다.
가장 먼저 사형을 폐지한 베네수엘라(1863년)를 비롯해 대표적 인권선진국이라 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권 국가 대부분은 사형제를 폐지하면서 종신형제도를 도입, 운용해오고 있다.
1933년 이후 나치의 학살을 경험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인 1949년 사형제도를 폐지하면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제도를 시행해왔다.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1978년 당시 독일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종신형도 집행 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할 때에는 위헌이며, 따라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자도 근본적으로 다시금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되며, 특별사면의 가능성 하나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밝혔다. 나아가 “종신형의 집행을 중지하는 전제조건을 세우고 그 절차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임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1981년 제19차 형법 개정 때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아들여 일정한 제한된 조건에서 가석방 규정을 둬 ‘상대적 종신형’으로 바꿨다.
사형을 폐지한 많은 나라에서는 살인범죄에 대해 유죄판결이 내려지면 종신형이 자동적으로 부과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모두 절대적 종신형이 아닌 상대적 종신형을 택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와 일본에서는 종신형을 선고할 최종 권한을 합의부(panel of judges)가 가진다. 아일랜드 스위스 영국 북아일랜드에서는 단독판사가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배심에 의해서만 종신형을 부과할 수 있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수형자 복역기간은 국가마다 다르다. 미국에서는 가석방 없이 일생을 복역하는 수형자가 1만명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에서는 통상 17∼18년을, 이탈리아에서는 21년, 오스트리아에서는 18년 내지 20년을 복역한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종신형을 살다 풀려난 이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재범률을 나타내고 있어 종신형에 대한 염려가 기우임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에서 1972∼1987년 사이에 석방된 전체 종신형 수형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이들 대부분이 석방된 후 처음 몇 년 동안 어떤 종류의 범죄로도 다시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다. 또 종신형을 복역하다가 심사를 받고 15년 내에 석방되었던 1045명의 수형자 가운데 11명(1.0%)이 사후에 살인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27명(2.6%)이 강간, 강도, 가중 침입절도나 방화와 같은 다른 중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캐나다에서 석방된 살인범죄자의 재범률도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종신형은 사형제의 대체 기능을 하며 인권 논란을 불식시키는 역할과 아울러 보편적인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는 절대적 종신형이 사형폐지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자 한 사회의 인권 관념과 틀을 바꾸는 획기적인 전기임을 보여준다.
“회개·보속의 시간줘야”
■주교회의 사형폐지위 김형태 변호사
“인간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하느님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타인 생명을 침해하는 폭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맞서야 합니다.”
주교회의 사형폐지위원회 김형태 운영위원장(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은 단호했다. 사형제도는 ‘생명’을 거스르는 만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어조다.
사형 존치론자들의 논리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사형제도가 폐지되면 범죄가 만연, 사회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논리는 말 그대로 우려에 불과합니다. ‘종신형’이 있지 않습니까.” 김 위원장은 “종신형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람이 다시 이 사회에 위험을 가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며 게다가 “종신형은 한 죄인이 사람의 온전한 인격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적 입장에서 볼 때 죄 지은 자가 회개하고 보속할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악을 저질렀다고 모두 다 죽이는 것은 교회 정신이 아니다”며 살인범 유영철의 예를 들었다. “유씨의 경우 처음에는 거의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흉악성을 보였습니다. 자신 조차도 존중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상적 인격체로서의 모습을 조금씩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일부 신앙인들에 대한 서운함도 감추지 않았다. “교회 안에서 조차 정의 관념이나 인과 응보적 관념에 사로잡혀, 사람을 죽인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단순논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일부 있다”며 “교회 입장이 사형 폐지인 만큼 모든 신앙인들이 힘을 모아 사형제도의 종신형 전환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사진설명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사형제도 폐지 기원미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사형수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사형제도 폐지와 종신형 입법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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