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사형제 폐지 한 목소리
범종교적 폐지운동 큰 성과
서명운동·아시아 포럼 등 실시
■메인기사 -교회의 사형폐지운동 성과
사형제도가 범죄를 억제할 것이라는 편견, 흉악범은 응당 징벌을 받아야 하고 사형은 합당한 징계 수단이라는 국민 감정은 사형제도 폐지 노력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80년대말부터 본격 전개됐던 국내 사형폐지운동은 이러한 편견을 깨고, 일방적이었던 국민 감정의 변화를 이끌었으며, 특히 종교계를 중심으로 90년대말과 2000년을 전후해 가속화된 사형폐지운동은 마침내 사형제도 폐지를 구체적으로 전망할 만큼 성과를 거뒀다.
사형 폐지를 위한 종교계의 노력은 사형제도가 법적, 형사적인 면을 넘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생명문화의 건설이라는 면에 주목하면서 사형폐지가 단지 종교계의 관심사에 머물지 않고,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연대함으로써 이뤄내야 할 과제임을 국민들에게 설득했던 것이다.
1987년 종교계 교정사목 중심, 사형폐지운동협 창립
국내에서 사형폐지운동이 사회운동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였다. 1989년 5월 30일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사폐협)가 창립됐는데, 그 모체는 천주교를 비롯해 각 종단의 종교인들과 자원봉사자 124인으로 구성된 ‘서울구치소 교화협의회’였다. 이후 사형폐지운동은 질적 양적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활동들을 바탕으로 2000년을 전후해 사형폐지운동은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대희년을 앞두고 한국교회가 정의평화위원회 중심으로 서명운동 등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면서 사형폐지운동은 폭넓게 대중화되어 이내 국민운동, 생명의 존엄성에 초점을 맞춘 생명문화운동으로 승화되는 기틀을 마련한다.
보편교회에서는 사형제도를 안락사, 낙태 등과 함께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로 간주하고 적어도 2000년 한 해 동안 만이라도 사형집행을 중지하자는 운동을 범세계적으로 펼쳐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범종교연합, 사형폐지소위 구성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있어서 두 가지 획기적 전환점이 마련된다. 하나는 범종교연합의 발족. 대희년을 마무리하던 2000년 10월 각 종단 사형폐지운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12월에는 대표자 모임이 이어졌다.
이듬해에는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이 구성됨으로써 종교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형제도 폐지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후 국내 사형폐지운동은 이 기구를 중심으로 긴밀한 연대와 협력을 이룬다.
또 하나의 전기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소위원회 설치이다. 주교회의 결정 후 각 교구 교정사목 담당자 등 10명의 위원들이 2001년 5월 23일 첫 모임을 가졌다. 소위의 발족은 주교회의 차원에서 사형폐지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교구 담당자들을 통해 교회 전체가 사형폐지에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었다.
사형제도의 대안으로서 종신형 제시
두 기구는 대국민 홍보활동과 함께 특별법 입법을 위해 국회의원들의 서명을 받았고, 여야위원 154명이 그해 10월 30일 사형폐지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동시에 전시회, 음악제, 연극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들과 함께 아시아 연대를 확인하는 ‘사형폐지 아시아 포럼’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2002년, 이같은 움직임은 한층 활성화됐고, 11월에는 영화 ‘데드맨 워킹’의 실제 주인공인 헬렌 프리진 수녀의 방한으로 국민들의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관심도는 한층 높아졌다. 이후 2003년과 2004년 역시 사형폐지소위와 범종교연합을 중심으로 한 사형제도 폐지운동은 계속 이어졌고, 특히 2004년 하반기부터는 사형제도에 대한 대안으로서 종신형 입법화를 더욱 강조하면서, 대안 제시에 더욱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사형폐지소위를 중심으로 각 성당에서 서명운동이 전개됐다.
김추기경·교황청의 사형폐지 의지
한편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더욱 모아주었던 것은 김수환 추기경의 지속적인 지지와 요청, 탄원이었다. 공식,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수없이 사형폐지를 주장해온 김추기경은 사형수들의 사면과 감형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보낸 일도 여러 번.
사형폐지운동의 태동기부터 적극 참여했던 김추기경은 가톨릭신문사 사장으로 재임 중이던 1964년 당시 2년간 대구대교구 교정사목 담당 사제로 사형수, 재소자들과 만난 개인적 체험을 통해 사형폐지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청과 보편교회의 사형폐지 입장 역시 국내의 사형폐지운동에 기여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98년도 성탄절 담화, 그리고 99년 1월 발표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아메리카 특별총회 후속문헌에서도 사형제도의 폐지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특히 교황은 당시 미국을 방문해 세인트루이스에 운집한 10만여명의 군중들에게 가톨릭은 인간 생명과 개인의 존엄성 보호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야 한다며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인터뷰-유영철의 손에 전 가족을 잃은 고정원씨
“용서가 희망이자 사랑”
“그 사람이나 저나 하루하루 어제와 다른 희망을 그려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손에 노모와 아내, 4대독자까지 모두 잃은 피해자이면서도 유씨를 위한 탄원서를 내 세간을 놀라게 했던 고정원(루치아노.64)씨는 법무부의 절대적 종신형제 도입 추진 소식을 누구보다 반기는 모습이었다.
최근 유씨로부터 참회의 편지를 받은 고씨는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그분만이 취하실 수 있는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사형제도 폐지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지난 설날을 앞두고는 남몰래 유씨에게 영치금까지 넣어주며 오히려 먼저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기도 했던 고씨는 “그의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느냐. 어린 남매가 떡국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마음에 걸렸다. 부모를 잘못 만나 평생 멍에를 지고 살지나 않을까 염려된다”는 말로 다시 한번 속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창살만 없지 유씨처럼 똑같이 감옥에 사는 것 같다”는 말로 가슴 깊이 드리운 아픔을 들여다보게 했다.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목이 메는지 쉬 말을 이어가지 못한 고씨는 답답할 때마다 성경을 필사한다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려오는 가슴을 다잡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하다보니 신약성서 필사만 2번을 넘어섰다.
다가오는 가족들의 3주기를 앞두고 신구약 필사에 다시 한번 매달리고 있다는 고씨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선도해야지 보복적으로 누구의 목숨을 빼앗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말로 그간의 고민을 응축시켜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위로하고자 한다면 가해자의 죽음이 아닌 피해자들이 아픔을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제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느님께서 제게 심어주신 용서는 참으로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 힘만으로는 견뎌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아픔을 이렇게 이겨나가게 해주니까요.”
유씨를 용서한 후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는 고씨는 늦깎이 신자로서 맛들이기 시작한 피정과 성지순례에 마음을 쏟고 싶다며 조그맣지만 온몸으로 그려가고 있는 평화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용서가 희망이고 생명입니다.”
■유영철이 보낸 참회의 편지
“숨쉬는 순간까지 뉘우치겠습니다”
지난 200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영철씨에게 노모와 아내, 그리고 4대 독자인 아들을 잃고 단란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풍비박산난 고정원(루치아노.64)씨. 가족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고씨가 큰 충격에 빠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고씨는 그 후 유씨의 경찰 현장검증이 끝나자 서울 지방경찰청장과 재판부 앞으로 각각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또 지난 명절에는 유씨의 외로움을 걱정해 영치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고씨는 이에 대해 인간이 인간을 재판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상에 대한 혐오와 불신만 가득했던 유씨의 마음도 고씨의 이러한 용서와 배려에 정화되어가고 있다. 최근 유씨가 그간의 행동에 참회하며 뉘우침의 편지를 보내왔다.
어르신, 못난 인간 인사드립니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새삼스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는 것조차 염치가 없지만 어르신의 놀라우신 마음에 저 또한 이렇게 슬프지만 가슴 아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용기를 냈습니다.
명절 때나 무슨때가 되면 어르신의 가슴시림이 저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많이 힘드셨을텐데 그럼에도 저의 외로움을 염려해주시고 영치금까지 배려해주신 어르신의 그 거룩함에 이 못난 인간 그저 면목 없어 고개만 숙여지고 눈물만 흘립니다.
어르신께서 그토록 따뜻한 분이셨기에 사모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르신을 부르셨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야 조금이나마 그 심정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에 대한 앙갚음이 목적이었던 저의 바보 같은 분노에 희생양이 되셨던 할머님과 사모님 그리고 저와 동갑내기였던 아드님의 모습까지 요즘 들어 부쩍 꿈속에 자주 나타납니다.
감히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저의 미래는 없지만 이 세상 떠나는 그 순간까지 숨쉬고 있는 시간시간 뉘우치겠습니다.
괜한 인사가 어르신께 심려를 끼치지 않았나 걱정이고 구차한 변명 같아 긴 말씀 올리지도 못하겠습니다. 진정 굴뚝같은 심정으로 사죄의 마음 가슴 속 깊이 전합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유영철 올림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