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터 둘러보며 순교신심 되새겨
제주 김기량 순교자 공적예배 유무 확인
서울 새남터·서소문 밖 사형장 등 조사
수원 남한산성 동문 밖·천진암 등 검증
지난 2002년 봄 주교회의 총회때, 103위 성인에 이어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통합추진하기로 결정한 한국교회. 그간 시복시성 대상자를 선정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그들에 대한 역사적 고증, 성덕과 순교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 시복재판을 16차례나 가진 바 있다. 이제 그 마지막 단계로 순교자들의 출생지와 생활한 곳, 순교와 관련된 감옥과 사형 터, 묘소 등을 답사하고 확인하는 한편 순교자들에 대해 공적 경배 행위를 검증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2월 14~16일 마산교구를 시작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장조사는 안동을 거쳐 2월 21~22일 제주교구, 3월 7일 서울대교구, 3월 8일 수원교구 관할지역에서 펼쳐졌다. 남은 일정은 부산 4월 18일, 대구 4월 19~20일, 대전 5월 9~10일, 청주 5월 11일, 전주 6월 1일 원주 6월 2일로 예정돼 있다.
2월 21~22일 제주교구
“나는 순교를 각오하였으니, 그대들도 마음을 변치말고 나를 따라 오시오.” ‘제주의 사도’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그를 배교시킬 수 없다고 느낀 통영 관장은 교수형을 당한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재차 죽음을 확인했다고.
김기량 순교자가 순교한 경남 통영과 체포된 것으로 추정되는 옛 당포진 등은 마산교구 방문때 이미 조사를 끝낸 상태. 그래서 제주에선 공적인 예배 유무만 확인했다.
조사단은 김기량 순교자 가문 5대손인 김행담(이냐시오)씨 안내로 김순교자 조부(김용해) 묘소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김행담씨는 “조부 무덤 바로 위에 조그마한 무덤이 있는데, 이것은 장손인 순교자가 먼저 죽자 순교자의 아버지(김광록)가 할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았던 아들을 생각해 만든 가묘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3월 7일 서울대교구
“한국교회 최초 박해인 신유박해 순교자들을 비롯해 아직까지 시복시성되지 못한 분들이 많아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성인품에 올리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보니 참으로 기쁩니다.” 3월 7일 서울대교구 현장조사 회기에 참석한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는 조사단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서울대교구 대상자는 38위. 이날 일정은 윤유일 바오로와 최인길 마티아, 지황 사바, 심아기 바르바라, 김이우 바르나바가 순교한 좌?우 한양 포도청자리였던 종로 3가역 근처와 동아일보사 앞 방문으로 시작됐다.
주문모 신부가 군문효수당한 새남터 사형장 자리(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와 조용삼 베드로 순교자가 옥사한 경기 감영(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1가 적십자 병원) 자리에 이어 25위가 순교한 서소문 밖 사형장(서소문 공원)에 도착한 조사단은 깊은 묵상에 젖어든다.
최창현 요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최필공 토마스, 홍낙민 루카, 최필제 베드로, 윤운혜 루치아, 정복혜 칸디다, 정인혁 타데오, 정철상 가롤로, 강완숙 골룸바, 강경복 수산나, 김현우 마태오, 문영인 비비안나, 김연이 율리아나, 이현 안토니오, 최인철 이냐시오, 한신애 아가다, 김종교 프란치스코, 홍필주 필립보, 현계흠 바오로, 손경윤 제르바시오, 이경도 가롤로, 김계완 시몬, 홍익만 안토니오….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조사단의 마지막 방문지는 당고개(용산구 신계동). 이성례 마리아가 참수당한 곳이다.
“절대로 천주님과 성모 마리아님을 잊지 말아라. 서로 화목하게 살며,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서로 떨어지지 말고 맏형 토마스가 돌아오길 기다려라.”
이성례 순교자가 자녀들에게 남긴 유언. 당시 그녀 나이 39세. 온화하고 평화스러운 얼굴로 하느님 품안에 안긴 순교자는 훌륭한 어머니로서, 모범적인 아내로서 후대 신앙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조사단은 순교지 이외에도 순교자들을 신문했던 의금부 자리(종로 제일은행 본점)와 전옥서(감옥 종로 1가), 형조(최후 신앙고백지 세종문화회관 자리)도 함께 둘러봤다.
3월 8일 수원교구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며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참가자는 재판관 대리 이찬우 신부, 검찰관 김길민 신부,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 류한영 신부, 공증관 장후남씨, 수원교구 사무처장 이철수 신부, 수원교회사연구소 정종득 신부와 연구원들.
이들이 처음 향한 곳은 한덕운 토마스가 참수된 ‘남한산성 옛길’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비석 부근 주차장 일대(남한산성 동문 밖).
“천주교 교리를 가장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찌 사형을 받는다고 마음을 바꾸겠습니까? 오직 빨리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사단은 한덕운 순교자의 마지막 진술을 묵상한 후 천진암 성지 내 한국순교자 창립선조 묘역에 있는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순교자 묘소로 향했다. 이어 조사단은 윤유오 야고보와 윤점혜 아가타 등 양근 순교자들 참수터인 양근리 502~504번지 일대와 대석리 앵자봉 자락에 위치한 권상문의 무덤을 찾았다. ‘생부 권일신이 사망한 이후에도 천주교에 깊이 빠졌으며, 아울러 요사한 말과 글을 대중을 미혹시키는데 이용했다.’ 33세의 나이에 이같은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받은 권상문. 한국천주교회 창설 주역인 권철신의 조카요, 권일신의 아들인 그는 한때 마음이 약해져 교회를 멀리한 적도 있지만, 곧 다시 돌아와 꿋꿋하게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했다.
조사단은 또 신유박해때 여주에서 순교한 최창주 마르첼리노와 이중배 마르티노, 원경도 요한, 정순매 바르바라, 정광수 바르나바의 순교터인 여주군 여주읍 창리 구장터 일대를 둘러본 후 여주 성당내 순교자현양비를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조사단은 옛 죽산도호부 관아(안성시 죽산면)내 옥터를 방문, 그곳에서 교수형을 당한 박프란치스코와 오마르가리타 부부 순교자의 순교터를 확인한 후 회기를 마감했다.
한편 이보다 앞선 3월 4일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최덕기 주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어농성지에 소재해 있는 윤유오 야고보 순교자의 무덤을 개봉, 참수 순교한 흔적을 확인했으며, 보다 정밀한 조사를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사진설명
▶서울대교구 현장조사 전 개정된 법정에서 서울대교구 염수정 주교(가운데)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무처장 곽성민 신부(일어선 이)가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고 있다.
▶수원교구 현장조사에서 조사단들이 최덕기 주교(왼쪽에서 네 번째) 등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권상문 순교자 묘소를 살피고 있다.
▶제주교구 현장조사에서 조사단들이 김기량 펠릭스 순교자 현양비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