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상주사제 파견’이 급선무
남북 화해 위해 참된 회개·용서 필요
침묵의 교회, 신앙자유 찾도록 기도를
동포애 차원 인도적 지원은 계속돼야
2. 민족화해와 북한 선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은 한국교회에 대한 다양한 기대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복음화에 있어서의 기대 역할이 그 하나이며, 북한 선교에 대한 기대는 또 다른 큰 기대라고 하겠다.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는 서울대교구장의 추기경 임명은 따라서 한민족의 화해와 일치, 북한의 복음화에 대한 보편교회의 기대인 것이다.
도식적으로 이번 추기경 임명의 일단을 바라본다면, ‘교황청-홍콩교구장-중국교회’처럼 ‘교황청-서울대교구장-북한교회’ 식의 관련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교구장인 젠 제키운 추기경이 중국 교회와 교황청과의 관계에 기여할 수 있듯이 한국에서는 북한 선교의 밑거름이 되는 역할을 서울대교구장이 맡아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광범위한 가톨릭적 뿌리를 지닌 필리핀의 마닐라 대교구장의 추기경 임명은 아시아 전체의 복음화에 일반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이번에 임명된 15명의 아시아 추기경 중 한국과 홍콩, 필리핀 추기경의 임명은 전체적으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커다란 밑그림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틀로 볼 때, 민족화해와 북한 선교에 있어서 서울대교구장, 그리고 서울대교구를 이끄는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역할과 소임은 막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추기경은 발표 직후 여러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교황님께서도 제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을 겸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저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셨을 것이라 짐작한다”며 이같은 교황청과 보편교회의 기대를 확인해주었다.
추기경 임명 발표 후 가진 여러 인터뷰 중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 통일과 관련된 발언들은 크게 몇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당연한 역사적, 신앙적 소명임을 전제로 하고, 참된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속죄와 용서의 자세가 반드시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8일자 동아일보에서 작가 최인호씨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추기경은 “한국전쟁 때 쌍방이 비인도적 행위를 많이 저질렀다”며 “남북이 화해하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고, 화해에 앞서 먼저 할 일은 서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사실 이같은 입장은 정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던 1998년부터 일관되게 표명되어왔던 것이다. 당시 본지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추기경은 “남과 북 서로가 6.25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입은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뉘우침이 있을 때 용서가 가능하고 화해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듬해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4주년 기념미사에서는 미사 강론에서 “남북이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며 서로 사랑과 존엄성을 해치는 일을 배격하고 “희생, 기도와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진정한 화해와 일치의 정신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추기경은 계속해서 2001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메시지에서 “용서와 화해야말로 평화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강조했고, 지난해에는 서울평협이 주최한 6.25 순교자 현양 특별기도회에서 미사를 통해 “남과 북의 화해를 외치기 전에 먼저 하느님 앞에 속죄하고 참회해야 할 것”이라며 “진정한 회개가 있을 때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분열과 갈등도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정추기경의 민족의 화해와 일치, 통일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은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입장, 즉 서로가 서로의 잘못에 대해서 성숙되게 인정하고 참회하며, 상대방이 잘못한 것을 겸허하게 용서함으로써 그 첫걸음을 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서울대교구가 추진하고 있는 ‘속죄와 보속을 위한 성전’은 바로 그러한 접근법을 구체화하려는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들이 이 성당에 찾아와 서로의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하여 용서를 청하고 상대를 용서함으로써 민족의 화해를 위한 정신적 토대를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죄와 참회, 용서를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는 ‘기도’이다. 정추기경은 역시 이에 대해서도 매우 일관성 있게 강조해왔다.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1998년 6월 정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 착좌미사와 축하식에 “교구 발전과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 신명을 다 바칠 것”을 세 차례나 다짐하면서, 이를 위해 “전교구민들은 나와 함께 하루에 묵주기도 한 단씩을 꼭 바치자”고 호소했다.
지난해 6월 순교자현양특별기도회에서도 정추기경은 “평양교구장으로서 목자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북한 신자들을 생각할 때 더할 수 없이 송구스럽다”며 “침묵의 교회,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곳에 사는 이들을 위해 신앙의 자유가 도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청하자”며 묵주기도를 당부했다.
한편 정추기경은 대북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조건 없이 계속할 뜻을 표시했다. 이미 서울대교구는 지난 10년 동안 북한 주민들을 위해 100억원의 물자를 조건없이 지원해왔으며 이같은 나눔의 실천은 인류애와 동포애에 바탕을 둔 것이니만큼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추기경은 북한의 종교 자유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하고 특히 침묵의 교회로서 북한에 사제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되고 있는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추기경은 교황 방문은 항상 사목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명의 사제도 없을 경우 교황 방문 자체가 어려울 것임을 들어 하루속히 북한에 첫 사제가 탄생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정추기경은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에 사제의 상주를 요청한 바 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설명 - 한국 전쟁 55돌을 맞아 정진석 추기경과 북한 출신 사제단 20여명이 공동 집전으로 6.25 전후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특별기도회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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