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은 매국노인가?
1492년이 세계 역사에서 어떤 해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 흔히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라고 답하고는 한다. 그런데 콜롬부스와 유럽인들은 정말 ‘신’대륙을 발견하였을까? 콜롬부스 일행이 처음으로 발을 디딘 저 땅, 오늘 우리가 ‘아메리카’라고 하는 저 대륙이 누구에게 ‘새로운’ 땅인가?
누구에게 신대륙인가
콜롬부스와 그의 부하들이 처음 당도하였을 때, 아메리카에는 이미 500여 부족에, 6천만 내지 7천만의 인구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태고 적부터 그들 나름의 고유한 문화를 일구며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중남미와 북미주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살아온 해묵은 땅이었다. 결국 우리가 아메리카를 ‘신대륙’이라고 일컫고 이땅이 ‘발견되었다’고 말한다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구인들 중심으로 쓰여진 역사를 답습하고 있음을 뜻한다.
콜롬부스가 그 옛 대륙과 유럽 사이의 ‘왕복 항로’를 처음으로 발견하여 이 두 땅 사이의 교류를 가능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볼 때, 그것은 결코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본토인들의 관점에서는 도리어 처음으로 총을 든 백인 침입자들을 발견한 사건이었을 수조차 있다. 말하자면 본토인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기 시작한 사건을 유럽인들은 신대륙 발견 사건이라고 일컫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로 백인들이 매년 10월에 ‘콜롬부스의 날’로 기념하는 그날을 본토인의 후예들은 그 슬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상황에서 미래를 새롭게 그려 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날’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 대륙을 ‘신’대륙이라고 해야 하는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이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구 중심의 역사 진술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역사란 이렇게 쉽게 지배자 중심의 이야기로 전도될 수 있고, 우리는 이렇게 쉽게 허구에 지배당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지배 세력이 주입한 정보를 따르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데 동조할 수조차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오류가 혹시 황사영 백서 사건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나지는 않는가? 황사영을 누가 매국노라 했는가? 당대 지배 세력이 그를 매국노라고 한다고 해서 그가 매국노일 수 있는가?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연 황사영 백서 사건의 전말을 아는가?
사건의 전체를 직접 확인하고 나서 자기의 견해를 밝히기란 많은 경우에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특히 비판의 경우에 신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비판의 신중함을 갖추지 못할 때, 많은 경우 비판이 천박해지기 쉽다.
역사의 영성적 이해 필요
백서는 알지 못한 채, 그 본문은 아예 본 적도 없으면서, 황사영과 그의 신앙의 동료들을 박해한 이들이 만들어서 퍼뜨린 이본을 근거로 이 사건을 판단하고 단죄해 오지는 않았는가? 만일 이런 식으로 황사영을 매국노라고 단죄하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황사영 사건을 판단한다면, 이것은 ‘신대륙’ 운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오류일 수 있다.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이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 우리 교회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충실에 근거하여 어떻게 응답하고 어떻게 바로잡아 갈 것인가? 황사영이 매국노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이 근본 오류를 바로잡고 나서 사실대로 밝히면 될 일이다. 먼저 이같은 방법적 오류를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이다. 그리고 이 과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자기의 신원에 충실한 형태로 자기의 역사를 보다 더 깊이 영성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민족과 함께 나누어 가는 일이다.
최근에 황사영 백서를 이해하는 데 디딤돌이 되어 줄 한 연구가 나왔다.
여진천 신부가 ‘황사영 백서의 원본과 이본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쓴 논문이 그것이다(2005년 서강대학교 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오직 황사영이 직접 쓴 원본을 통해서만이 신앙 때문에 고난을 겪던 동료들에 대한 그의 연민과 고뇌, 조국의 갱생에 대한 희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낼 수 있는 부족 등을 좀더 바르게 평가할 수 있을 따름이다.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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