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딱딱한 교리,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아주 특별한 순례로 포기유혹 ‘싹’
“오늘도 교리시간에 나오지 않으셨으면, 제가 집으로 찾아가려 했어요.” 김미자 교리교사가 뛸 듯이 기뻐했다. 이순규(66) 할머니가 모처럼 교리시간에 나온 것. 하느님 자녀로 초대된 만큼 한 명이라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리교사의 의지. 하지만 할머니 반응이 영 신통찮다.
“교리가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도통 알지도 못하겠구…, 골치가 아파서….” 이 할머니는 교리를 받는 것이 못마땅한 눈치다. 오래전 세례를 받은 남편의 권유로 성당에 나오긴 했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늙은 나이에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것이 부질없는 짓인 것 같아서 성당에 나오기 꺼려진단다.
교리교사가 교리서를 덮었다. 오늘 만큼은 딱딱한 교리는 포기. 이순규 할머니를 위한 배려다. 깨알같은 글씨의 성경를 읽어가며, 교리를 했다가는 할머니가 다시는 교리시간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다. 예비신자들을 하느님께로 이끌기 위해선 이렇게 살얼음판 걷듯이 해야 한다.
예비신자들은 지난 주말, 절두산과 새남터 성지를 순례한 느낌들을 나눴다.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 수많은 이들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천주교 신앙이 조금씩 마음으로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부담이 느껴집니다. 신앙 선조들이 그렇게 지킨 신앙인데, 과연 내가 그렇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예비신자들은 처음 경험한 성지순례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듯했다. 특히 ‘주일 나들이=즐기는 여행’이라는 등식에 익숙해 있던 예비신자들은 ‘주일 나들이=영적 휴식’도 가능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에 기뻐했다. 이구동성. “5월에 성지순례를 또 가기로 합시다.” 예비신자들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신기해요. 성경을 읽으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터득한 모든 살아가는 이치가 담겨져 있어요.” 김태식(73) 할아버지가 대뜸 성경 이야기다.
분명 성경을 읽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게다. 김 할아버지는 성경이 재미있다고 했다. 이기화, 강성아씨도 “성당에 나오는 것이 편하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데도 성당에 오는 것이 기다려진다”며 김 할아버지를 거들었다.
낮 12시. ‘사도신경’과 함께 고난도 기도로 통하는 ‘삼종기도’를 했다. 기도서를 이리저리 뒤적이며(기도서 삼종기도에는 성모송 부분이 제목만 있어, 성모송을 외우지 못하는 예비신자들은 별도로 성모송 부분을 찾아 읽어야 한다) 한참동안 헤맨 뒤에야 간신히 기도를 마칠 수 있었다.
“오늘은 제가 점심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교리교사가 밥을 사겠다고 했다. 역시 김순규 할머니를 위한 배려다. 갈치조림과 된장찌개. 7명을 위한 푸짐한 식탁이 마련됐다. 수저와 밥그릇이 부딪히는 “달그락”소리와 함께 하느님 안에서의 친교도 그렇게 쌓여갔다.
사진설명
예비신자 강성아씨가 작성한 성경 필사노트.
취재 협조=서울 고척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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