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구요? 희망은 하나랍니다”
윤능민 각자 재능 발견·개발에 정진을
박봉자 나누며 사는 삶, 가장 큰 행복
윤민정 어르신들의 배려·연륜 부러워
백승태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문화 필요
너무 다르다구요? 네, 50세도 훨씬 넘는 나이차이군요. 1927년생 어르신과 1979년생 젊은이.
50년이면 강산이 5번은 변한다고 하죠. 그래서 세대차도 크다구요? 그렇다고 ‘통’하는 것이 없을까요?
가톨릭신문도 1927년에 태어나 창간 79돌을 맞았습니다. 올해는 79세 어르신과 79년생(27세) 젊은이들의 만남 자리를 마련해 보았습니다. 이들의 ‘세대공감’, 같이 한번 들어볼까요?
봄볕 따스한 3월 마지막 주말, 어르신과 젊은이들의 ‘미팅’날입니다. 윤능민(토마스.79.이하 윤) 할아버지, 박봉자(도로테아.79.이하 박) 할머니, 윤민정(비아.27.이하 민).백승태(사도요한.27.이하 백)씨가 함께 했어요. 서울 명동의 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명동거리를 산책했어요. 할아버지에게 명동은 젊은시절 근무지로 추억이 가득합니다. 할머니에게 명동성당은 최고의 기도장소래요. 젊은이들은 명동을 쇼핑공간으로 꼽는다는군요.
젊은이들은 카페에 자리잡자마자 할아버지 할머니의 접시와 수저를 먼저 챙깁니다. 명동 산책에 나선 할아버지는 시종일관 웃으며 젊은이의 어깨를 툭툭 치십니다. 할머니는 친구처럼 팔짱을 끼시는군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일이 가장 궁금했나봅니다.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의 연륜을 하나라도 더 들으려 한껏 고개를 빼어냅니다.
서로 대화가 잘 되냐구요?
그런 판다는 무의미한듯 합니다.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있는 그대로 듣습니다.
어르신이 편안한 사회, 젊은이들의 활기가 넘치는 사회가 우리 모두가 행복할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신앙을 살아가는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윤 : 요즘은 젊은이들이 더 바빠 시간이 없지. 공부한다고 그러는가? 그런데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 우리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던걸(허허).
박 : 손주들이 어릴 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커갈수록 아이들이 바빠지는 건 당연하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싫어서 대화하지 않는다고는 생각안해요.
민 : 어릴 때는 늘 할아버지 할머니 뒤를 쫓아다녔는데…. 그런데 대화는 관심만으로 되는 건 아닌 듯 해요. 서로 접하는 문화가 너무 다르니까요.
백 : 대학교에서 설문조사한 것 등을 보면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많으시더라구요. 게다가 우리들의 외형도 부정적으로 보시고, 우리를 너무 모르시던걸요.
윤 : 대화할 때 젊은이들과 나눌 이야기거리가 부족해. 좋아하는 공통분모를 찾기 힘들지. 그러니 손주들과도 안부 한두마디 묻고 나면 할말 없이 머쓱해지는거지.
백 : 저도 사실 어르신들이 우리가 겪어보지 않은 삶을 늘어놓을 때는 듣기 지루할 때가 많았어요. 저와는 너무 다른 삶이라 흥미도 별로 없었고요. 그래도 강의를 할 때면 오랜 경험을 거친 어른들의 말씀이 큰 도움이 돼요. 전 교구 청년연합회 강사팀에서 활동하고 있거든요.
민 :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친구들을 보면 아는 것이 많아 부러웠어요. 모두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래요. 저도 취업 등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는 어른들의 조언을 먼저 청하게 돼요.
백 : 세례받은 때가 6.25 전쟁을 전후해서인데 그때 성당에 다니는 청년들의 모습은 어땠나요?
(대화 중 네명 모두 각각 중학생과 대학생 나이에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민 : 네, 저희 주임신부님께서는 젊은시절 청년 행사를 하면 200~300명은 족히 모였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왜 그러냐고 다그치시곤 해요. 그 시절에도 성당에 청년들이 많았나요?
윤 : 난 고향이 평양인데, 그땐 볼거리가 없어 예배당을 찾곤 했지. 해방후에 친구 덕분에 성당엘 갔어. 옛날엔 요즘처럼 청년들의 문화가 다양하질 못했지. 사실 교회활동이 거의 전부였어.
박 : 젊은시절부터 돈을 버느라 성당에 열심히 나가기도 힘든 시절이었어. 난 결혼을 일찍 했는데, 특히 미신을 많이 믿던 시절이라 개종하라는 강요를 많이 받았지.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모두 종교탓을 했으니. 그래도 대축일이나 큰 행사 참례하는 것이 가장 크고 기쁜 일이었어.
민 : 어르신들을 보면 늘 많은 것을 알고 배려해주시는 연륜이 항상 부러워요.
백 : 맞아요. 늘 실수하는데 어른들은 다 알고 계시지요. 근데 사실 어른들이 방법을 이야기해줘도 저희한텐 잘 안들리거든요. 지나고보면 제가 틀린 경우가 많아 후회돼요.
윤 : 사람이면 누구든 실수를 하지. 중요한 건 실수를 하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앞으로 그 실수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는 거지.
난 젊은사람들이 다양한 연애경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랑을 해보고 받아본 이들이 더욱 성장하지. 연애 한번 안해본 사람은 헛 산거지. 얌전하게 산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니거든.
박 : 요즘 젊은이들은 그래도 여러가지 교육을 많이 받아 우리 때 젊은이들보다 실수가 적은 듯 해.
민 : 저희는 사실 30년도 채 못살았지만 ‘삶이 힘들다’란 말을 곧잘 하곤 해요. 어떤 때가 가장 힘드셨어요?
윤 : 식민지 시절에 전쟁, 혁명…. 젊은이들이 보기엔 우리가 참 힘든 시간을 거쳐왔다고 생각하고 안타까워하지. 힘겹게 일해도 우린 즐거웠어. 늘 희망이 있었거든. 하지만 나이들고 할 일이 적어지니 좀 권태스럽긴 해.
박 : 생활고로 힘들 때도 자식들 생각하며 버텼는데, 너무 내 자식들만 생각하다보니 더 베풀고 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워. 요즘 나누며 사는 기쁨을 누리고 있지.
윤 : 일제 시대 때는 의사 아니면 변호사가 되는 것이 잘 사는 길이었지. 이젠 삶이 다양해지고, 각자 재능을 찾을 기회도 많지. 빨리 하고싶은 일과 재능을 발견해 계발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지.
박 : 예전 어른들이 보시기에 우리들도 철없는 젊은이들이었지. 요즘 젊은이들은 풍요로운 시대를 누릴 기회가 많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해.
민 : 전 통계 관련 회사에 최근 입사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제 고정적인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시는데 일과 시간에 어떤 소일거리를 하시는지 궁금해요.
백 : 전 물리치료학과를 전공하고 있거든요. 학과수업과 연결돼 실버타운 등을 견학해봤어요. 그곳 어르신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분주하셨지만, 이용료가 너무 비싸 안타까웠어요.
윤 : 실버타운에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 요즘엔 친구들을 많이 만나. 컴퓨터도 자주 사용해. 사이버바둑도 두고, 이메일도 주고받고 은행업무도 컴퓨터로 해. 참 편해졌어.
박 : 성당에서 하는 노인대학도 나가고, 일주일에 두번씩 요가도 하고, 노래도 배우고. 건강해야지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지.
백 : 전 학과 수업에다가 교육, 청년회 봉사활동을 하면 여가를 따로 즐길 시간이 거의 없어요. 여자친구와 데이트하고 가끔 친구들과 술한잔 나누는 정도.
민 : 아, 어르신들과 함께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건강도 지키고 대화도 하고 일석이조네요.
백 : 그래요. 어르신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문화교류의 자리가 많이 개발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놀이문화를 많이 발굴했으면 해요. 저희가 초등학생과 함께 술집에 갈 수 없듯이...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갈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민 : 네, 무엇보다 어른들과 문화적인 세대차가 가장 큰 것 같아요.
윤/박 : 좋은 생각이네. 같이 즐길 수 있다면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교류가 많아지겠지.
그래도 지금 그대로의 나이에서 젊은이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 때가 있는 것이거든. 열심히 공부만 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민/백 :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대화하다 보니 바로 지금 해야할 일을 올바로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되새겼어요. 의외로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선입견도 적으시고, 긍정적으로 봐 주셔서 너무 놀랐습니다. 많은 격려가 되는걸요.
누구하고든 친교를 나누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포용하고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여럿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니까요.
사진설명
50년도 훌쩍 넘는 나이 차이를 가진 1927년생 어르신들과 1979년생 젊은이들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윤능민 할아버지, 백승태씨, 박봉자 할머니, 윤민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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