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 사실 빼고 백서 위조
황사영은 백서에서 매국적이라고 비판받아 온 방책들을 제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백서의 2/3 이상을 할애하여 박해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거나 고초를 겪은 신자들에 관해 진술한다. 그런 속에서 당대 민중이 겪어야 했던 참상의 단면을 그려나간다.
민중의 참상 담았지만
당대 노론 벽파 지배 세력은 신유년 사건을 치르면서 청국인 주문모 신부를 처형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청나라가 이 일을 문제삼을 것을 염려하여 신유년 사건의 전말을 청국 황제에게 보고하면서 백서를 위조한다. 자신들이 무참히 살해하거나 가혹하게 형을 집행한 신앙인들에 관한 기록을 완전히 누락시켰다. 그것이 그대로 청나라에 전해졌다가는 책임을 추궁당할지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탄압하고 학살하고는 그 사실을 역사에서 제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발생시킨 이 피의 역사를 도외시한 채 이들이 매국자라고 비판하는 사람을 그냥 그대로 매국노라고 일컫고 말 것인가? 적어도 그들이 자행한 잔혹한 폭력의 실상을 전하는 그 보고서를 보고 나서 매국을 말해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전제 위에서 먼저 황사영이 백서 말미에 진술한 교회 재건 방안을 간략히 보기로 한다.
황사영은 베이징과 유럽 교회의 도움을 통하여 ‘성교가 끊어져 없어지는’ 비극을 극복하고 교회를 지킬 방안을 찾았다.(87∼119행) 그는 서양 국가들의 재정 원조를 요청하면서(91∼98행), 연락원을 조선 의주와 청나라 측 관문 사이에 이주시켜 가게를 여는 등의 방식으로 베이징 교구와 연락을 지속시킬 것을 제안한다.(98∼100행) 이 두 안은 당대의 지배 세력이 ‘밀통이역(密通異域)’, 곧 다른 나라와 은밀히 내통하려 한 죄로 비판하였다.
셋째로, 교황을 통해 청 황제에게 외교적 압력을 가하여, 천주교를 자유롭게 믿게 할 것을 제안한다.(100∼101행) 이어서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방안으로 청국이 조선에 통치권을 행사하게 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영고탑’에 조선을 복속시켜서 보호받게 하는 방안(103∼105행, 107∼109행)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선을 청의 부마국으로 삼게 하라는 것이었다.(106행) ‘영고탑’은 청나라 발생지로, 현재 흑룡강성 영안현 지역을 말한다.(여진천) 말하자면, 청나라의 발상지에 조선을 복속시켜서, 보호국으로 삼게 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끝으로, 서양의 큰 선박과 군사를 보내 줄 것을 청한다.(109∼118행) 이 안은 ‘큰 선박을 불러들인[請來大舶]’ 죄로 비판받았는데, 군함 수백 척과 정예군 5, 6만 명과 사리에 밝은 청나라 선비 서너 명을 데리고 해안에 이르러 국왕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제안한다.
“우리는 서양의 전교하는 배입니다. 여자와 재물을 탐내어 온 것이 아니고 교황의 명령을 받고 이 지역의 생령을 구원하려고 온 것입니다. 귀국에서 한 사람의 전교사를 기꺼이 받아들이신다면 우리는 이상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도 없고, 절대로 대포 한 방이나 화살 하나도 쏘지 않으며…영원한 우호조약을 체결하고는 북 치고 춤추며 떠나갈 것입니다.…”(번역: 여진천)
서학 크게 행하려는 의도였다
황사영은 심문 과정에서 이것이 중국에서처럼 ‘서학을 크게 행하게 하려는’ 의도였지 무력 침략을 획책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수백 척의 군함과 군대로 나라와 백성을 해칠 수 있는 발상을 표현한 것이 지나친 것이었고 미흡했으며 결과적으로 반역죄를 짓게 되었다고 인정하였다.
한국교회는 이런 황사영을 시복시성 대상자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많은 지도자가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한 황사영에게 시복과 시성의 영광을 누리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교회 중심의 신앙관을 극복하고, 민족 앞에서 교회가 범한 과오에 대한 반성과 민족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그를 대상자로 선정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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