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교회가 복수 추기경 시대로 접어들었다. 많은 이들이 변화된 한국 교회의 위상에 기뻐하고 감격했다. 그러나 높아진 위상에는 책임과 의무도 따르는 법. 한국교회의 새 추기경 임명은 우리가 이제 아시아 복음화의 맨 앞줄에 서게 됐음을 의미한다. 고민도 함께 커진다. 한국교회는 아시아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진정 준비되어 있는가.
아시아의 교회들은 어떻게 협력하고 연대해야 하는가.
가톨릭신문사는 새 천년기 아시아 복음화에 있어서 한국교회에 부여된 소명을 점검하고, 아시아 복음화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아시아 교회들의 연대를 위한 야심찬 기획으로 ‘아시아 교회가 간다 II’를 기획했다.
앞으로 1년 동안 이어질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아시아 교회의 역동적인 현장 한가운데, 아시아 복음화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선교회 및 수도회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을 성찰하는 자리를 가졌다.
▨ 참석 : 서계순 수녀(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전교수녀회 한국관구장)
양창우 신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성소국장)
유종권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선교센터원장)
▨ 사회 : 박영호 취재팀장
▨ 일시 : 3월23일 오후 2시
▨ 장소 : 본사 서울사옥
“아시아 복음화 주도, 한국교회만이 여건 갖춰”
복음화율 2~3%불과
정치·사회적 이유 탓
▲박영호 : 우선 아시아 복음화의 현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현재 아시아 대륙 복음화율은 2~3%에 머물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대륙에서 유독 이렇게 직접적 선교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종권 신부 : 가장 큰 이유는 정치 사회적 문제입니다. 탈냉전으로 동독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개방됐지만, 아직도 아시아에서는 중국 등 공산주의가 건재합니다. 종교 활동 자체가 금지되는 상황에서 복음화의 가능성 또한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서양 선교사들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인식입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선교사의 나라로부터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아시아인들은 서구를 제국주의 세력으로 인식하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말끔하게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간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일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아시아 교회 스스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복음화에 대한 아시아 교회 자체의 연대 노력도 미진했습니다.
▲양창우 신부 : 과거 서양에서 온 일부 선교사들은 종종 세례를 주고 개종시키는 것이 복음화라는 인식으로 아시아 선교에 임했습니다. 아시아인들의 입장이 아닌 자신들의 사고 방식만 생각한 것이지요. 아시아인들의 거부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계순 수녀 : 아시아에는 이미 이슬람, 불교 등 전통 종교들이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죠.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오랜 기간 인도네시아에서 노력했지만 기존 종교로 인해 큰 선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민 통치를 했던 서구사회에 대한 아시아 몇몇 나라들의 반감도 어려운 점입니다. 인도네시아만 해도 유럽 선교사와 아시아 선교사에게 주는 비자 기간이 다릅니다.
▲양창우 신부 : 우리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복음화되었는가도 자문해봐야 합니다. 스스로 변화되고 거룩해진 모습을 아시아인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교에 열린 자세
인재 양성이 중요
▲박영호 : 아시아 교회에서 한국교회 역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시아 교회에 다가가야 할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종권 신부 : 아시아 복음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 나라는 현재 한국교회 뿐입니다. 필리핀은 잘 알다시피 정치 상황이 불안하고 경제 상황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유일의 가톨릭 국가라는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교회도 외국인들에 의해(필리핀 등) 활성화 될 정도로 열악한 상황입니다. 일본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안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교회에 기여할 힘이 부족합니다.
한국은 정치 경제 등 모든 부분에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제반 여건이 가장 나은 형편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선물이자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추기경님의 임명 자체는 교황청이 아시아 안에서 한국교회의 특별한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한국에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제반 여건을 성숙시키시는 것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양창우 신부 : 인재 양성이 중요합니다. 국제적 감각을 갖춘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시아 어느 곳에 파견되든 자유롭게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 갖춘 젊은 사제 양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자세도 중요합니다. 한국의 사제들이 언제든지 아시아 각국에 나가서 활동하고 또 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자유롭게 들어와 활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류가 활발히 이뤄져야합니다. 외국 선교사들은 우리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고,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 사제들은 또 한국교회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언어능력도 배양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타 문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도 필요합니다.
▲서계순 수녀 :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아시아 선교에 있어서 적극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가 이 문제에 대해 피부로 느끼느냐 하는 점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해외 선교는 특별한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자들 안에서도 해외선교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외선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동참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됐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한국교회의 가장 큰 자원은 평신도입니다. 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평신도 활동이 활성화 되어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런데 정작 평신도들의 선교의식은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해외 선교를 수도자나 성직자의 전유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외국의 경우 젊은 평신도들이 수개월 동안 해외선교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교가 생활화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해외선교가 생활화 되어 있을 때 아시아 선교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양창우 신부 : 수녀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선교에 대한 의식화가 중요합니다. 저희 선교회에서도 평신도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는데 아주 효과가 큽니다. 특히 여성들이 많이 참여합니다. 한국여성의 특징은 희생과 헌신 정신 아닙니까. 필리핀이나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한국 여성 평신도 선교사들입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진정한 연대는 마음 열고 선교의식 갖추는 것”
선택된 사람의 특별활동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해외선교’
‘내 일이다’ 생각하고 관심 가져야
▲박영호 :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선 필연적으로 아시아의 지역 교회들 간의 긴밀한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아시아 교회들간의 연대와 협력의 수준이 어떠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요.
▲유종권 신부 : 아시아교회 연대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서 우리 스스로의 연대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연대는 해외선교의식이라는 공감대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교구, 사도생활단, 봉헌생활회, 평신도 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선교 사명에 동참하고 거기에 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는 이 기본적 사실부터 자각해야 합니다. 결국 아시아 교회의 진정한 연대는 우리 안에서 해외선교의식을 갖추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이제야 말로 해외선교의 사명을 서로 공감하고 인정하고 각계각층이 본래 모습으로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 아시아 여타 교회도 연대에 참여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 자체 안에서 하나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하루빨리 해외선교를 위한 총체적 연대, 합리적 네트워크가 만들어 지길 바랍니다. 현재 아시아 교회 복음화를 위해 나설 수 있는 나라가 한국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자축할 것만 아니라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선물로 생각하고 해외선교 특히 아시아 선교 사명을 깨달아 연대하고 나눠야 합니다. 특히 아시아 교회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묻는 작업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봅니다.
▲양창우 신부 : 연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문화는 상당히 권위주의적 측면이 있습니다. 타 문화를 인정하고 타 문화권에 갔을 때 그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외국을 나갈 수 있고, 또 외국 선교사들도 언제든지 들어와 활동할 수 있는 쌍방간 교류가 필요합니다.
왕래가 있어야 연대가 생깁니다. 함께 일해야 신뢰감이 쌓이고 연대감이 생깁니다. 구체적으로는 필리핀 등 가까운 역량 있는 교회들과 연대를 먼저 이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박영호 : 아시아 복음화를 이야기 할 때 연대와 함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토착화 문제입니다. 수년전만 해도 토착화에 대해 많은 연구와 작업이 이뤄졌는데 최근 들어 논의가 줄어드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서계순 수녀 :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토착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또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례, 신학, 종교간 대화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신앙생활 쇄신과 질적 성장, 친교와 나눔, 봉사 부분에서 토착화에 대한 논의가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착화의 원형은 예수님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가 바로 가장 큰 토착화고 그 원형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의 토착화는 차별이나 우월이 아니라 참여와 대화, 나눔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에는 이미 불교 이슬람 등 큰 종교들이 있습니다. 아시아인의 심성에는 근원적으로 절대자를 찾는 마음이 심어져 있는 것입니다. 삶의 근본적 질문을 찾는 아시아인의 심성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삶으로 사신 사도 바오로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토착화는 우리식 토착화가 아닌 그리스도적 토착화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종권 신부 : 토착화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토착화를 향한 여정에 있습니다. 유럽교회도 토착화 중에 있고 로마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시아는 서구와는 다른, 곧 아시아만이 공유하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 자연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숨결에 대한 경외심, 생명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아시아만의 특성이 존중되고 연구되어야 합니다. 그 연구들이 선교 현장에서 구체적 선교 방법으로 적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 전달자이자 토착화 협조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선교사들이 많이 배출돼 각 나라별로 토착화가 성숙되길 희망합니다.
▲양창우 신부 :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토착화는 한국인이 한국교회의 주최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한국에 온 외국 선교사들이 하셨던 가장 큰 토착화 공적은 한국인 사제 수도자를 양성하고 이들이 한국교회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앞으로 해외 선교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큰 토착화는 그 지역 사람들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신앙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합니다.
▲박영호 :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아시아 교회 연대 및 복음화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서계순 수녀 : 우리 모두 ‘선교사 파견’이라는 말 자체에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외선교는 특별히 선택된 이들만의 특별한 활동이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바뀌었듯이 선교는 예수님과 함께 가는 만남의 여정입니다. 선교는 세상 끝날 때 까지 우리와 함께 있겠다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양창우 신부 : 해외 선교에 참여할 분들이 많아졌으면, 특히 해외 선교를 지망하는 성소자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젊은이들의 관심도 필요합니다. 낯선 땅에서 노력하는 해외 선교사들에 대해 격려하고 기도하는 분위기도 확산됐으면 좋겠습니다.
▲유종권 신부 : 해외 선교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어느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누구만의 몫이 아니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곳에서 헌신하는 해외 선교사들에 대한 관심이 중요합니다. 한국교회가 아시아 교회와 접하는 창구가 바로 해외선교사들입니다.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는 해외 선교사들에 대한 관심이 아쉽습니다.
▲박영호 : 오늘 나눈 대화가 아시아 복음화와 연대의 작은 불씨가 되길 희망합니다. 또 가톨릭신문이 올 한 해동안 진행할 아시아 교회 연대와 관련한 기획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설명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창우 신부, 서계순 수녀, 유종권 신부, 박영호 팀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