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현장에서 활발한 생명교육을”
반 생명적인 사회풍조에 날카로운 지적을
더이상 윤리학자·전문가 전유물 돼선 안돼
생명가치 수호는 “신자 삶의 지침” 일깨워야
인간배아 복제연구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해 6월 15일 서울 명동 주교관 집무실에서 황우석 박사를 만났다. 인간 배아가 온전한 인간 생명임을 천명하고, 배아의 파괴를 야기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살인행위와 다르지 않다며 배아 복제 연구를 반대해온 정추기경. 질병 치료를 위한 과학의 권리를 주장하며 배아 복제 연구를 사회적 과제로 내세워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수행해온 생명공학자.
이 만남은 첨예한 대립을 이루는 두 진영의 지도자간 만남으로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그 현장은 얼핏 상호 존중과 관용의 분위기로 일관되는 듯했지만 정작 두 사람의 만남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정추기경은 비록 온화하고 다감한 어투로 황우석 박사와의 대화를 이끌었지만 그 메시지는 분명했다. 즉 인간 배아 복제 연구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비윤리적이고 반생명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이미 정추기경은 만남에 앞서 이러한 입장을 매우 강경한 어조의 강론자료를 통해 표명한 바 있다. 이는 교회의 기본 입장이었으며. 주교회의 역시 6월 4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배아줄기세포에 반대해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제시했다.
교회는 일관된 배아 연구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으며, 정추기경의 일련의 움직임은 이러한 교회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단호한 선택이었다.
이후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연구 과정은 물론 과학적 연구 결과에 있어서 조차 과학자적 양심을 저버린 것으로 밝혀졌고,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킨 후 이제 엄정한 절차에 따라 법적 조사를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윤리적인 측면을 도외시한채 브레이크 없이 내리막길을 치닫는 맹목적 과학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큰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성찰해볼 때,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얻어진 교훈들조차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원칙에서보다는 과학적 연구 과정의 문제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황우석 박사 연구가 문제시된 것은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 구체적으로 배아가 인간 생명이라는 원칙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황우석 박사의 배아 복제 연구가 중단됐다고 할지라도 교회의 과제는 남아 있다. 배아가 인간 생명임을 우리 사회가 명백하게 인정하고 그 존엄한 생명권을 존중하는 자세가 정립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황우석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존엄성 수호
교회는 이제 생명윤리 문제와 관련해서 첫째로, 좀 더 선명하게 자기의 입장과 노선을 표명하고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황우석 박사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던 당시, 교회는 마치 “모두가 ‘네’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난치, 불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은 교회가 마치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고 편협한 교리적 입장에 사로잡혀 있는 듯 교회를 비난했다. 이런 거센 비난에 직면해 교회는 근본적인 입장의 변화는 아닐지라도 이런 비난의 화살에 대해서 잠시 움츠러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주저하거나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반생명적인 사회 풍조에 대해서 선명하고 날카로운 지적을 해나가야 한다.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은 좀 더 예언자적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제 생명윤리 문제는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돼야 한다. 최근 몇 년간 핫 이슈로 등장했던 배아줄기세포 연구 역시 생명윤리 문제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생명윤리 문제에는 그 외에 낙태, 안락사, 피임, 불임시술, 성(性) 문제 등 우리 일상 삶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다양한 영역들을 포함한다.
이들 영역들은 모두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들이 준수돼야 하는 긴급한 생명윤리 문제들을 안고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심지어 교회내의 신자들 사이에서조차 엄격하게 준수되지 않아도 좋은 비현실적인 지침이라는 의식이 팽배해있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조사들을 통해서 그 실태들이 파악된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신자들 조차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신자들조차 교회의 윤리 지침들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 사회 안에서 교회의 가르침들이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교회의 생명 가치 수호 노력은 서울대교구의 경우 지난해 교구장 직속으로 설치된 생명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배아줄기세포 논란을 계기로 설립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문제의 지적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위원회 발족과 함께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100억원의 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직은 그 활동 방향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대안들을 수립하기 위한 모색의 기간으로 보이지만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활동은 그 규모와 전망, 광범위한 참여 전문가들을 통해 볼 때 앞으로 교회의 생명수호 노력에 있어 큰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생명교육의 중요성
이미 위원회가 지향하고 있듯이, 위원회의 활동은 단지 하나의 위원회 활동에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생명 가치의 수호는 전 신자들의 일상 삶의 지침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명교육의 중요성이 지적된다. 위원회는 곧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에 대한 생명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교육을 통한 인식 전환을 바탕으로 일선 사목현장에서의 활발한 생명운동이 시작돼야 할 것이다. 교육과 실천은 함께 가야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생명운동이 일부 윤리학자나 관련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 신자들 조차 교회 가르침을 외면하는 지금까지의 구태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서울대교구 생명의 날 미사 봉헌후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단과 가수 이소은씨, 뮤지컬 배우 최정원씨 등 연예인 홍보대사들이 생명팔찌을 착용하고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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