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앙인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절망 않고 하느님 나라 실현에 매진
4. 예수님의 비유와 가르침(마르 4, 1~34)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신다. 그런데, 군중이 너무 많이 몰려 예수님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다(4, 1).
언뜻 보면 낮은 곳에서 언덕을 향해 외치는 것이 과연 전달이 잘 될까 싶은데, 기상학적으로 볼 때는 예수님께서 기상 여건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아주 날씨가 맑은 날 오후에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서 소리가 높은 쪽으로 전달이 더 잘 될 뿐만 아니라 호수에서 산 쪽으로 부는 바람(해풍)에 의해 소리가 넓은 지역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한다. 요즘처럼 대중연설은 으레 대형 마이크에 의존하는 걸로 아는 세대에게는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수만 명 수용 가능한 로마 시대 원형경기장만 보아도 얼마나 설계가 잘 되었는지 앞에서 육성으로 말해도 어디서나 잘 들리는 걸 보면, 각 시대마다 남다른 삶의 지혜가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실 때 주로 비유 양식을 많이 사용하시는데,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견되는 소재를 사용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이야기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4, 1~9),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4, 26~29), 겨자 씨의 비유(4, 30~32), 무화과 나무의 비유(13, 28~29),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 비유(13, 34~36) 등 모두 ‘하느님 나라’라는 주제와 연결된 비유 5편이 수록되어 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4, 3~8)
비유 양식이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된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의 지리적 배경이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워낙 생소해서 예수님 시대 상황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비유의 핵심 내용을 못 알아듣는다는 뜻은 아니고, 그 곳 환경을 조금만 알면 훨씬 더 공감이 갈 것이라는 말이다.
팔레스티나 지역에선 4~10월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여름철 휴경기가 지나 11월 초순 첫 비가 내릴 때쯤에 밀이나 보리를 심게 되는데, 먼저 씨를 뿌리고 비가 온 후에 땅을 갈아엎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다.
이 비유의 초점은 ‘씨 뿌리는 사람’에 있다. 그런데 이미 전승과정에서 비유의 핵심을 흐리게 하는 부차적인 설명들이 붙어 있다. 첨가된 부분을 제거하고 비유의 원래 골자만 추리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보십시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 위에 떨어지게 되어 새들이 와서 그것을 집어삼켰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해가 솟자 타 버렸습니다. 또 다른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가시덤불이 자라자 그것을 숨막히게 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씨앗의 허실에도 불구하고 풍작을 꿈꾸면서 씨 뿌리는 사람처럼,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를 위한 복음 선포 활동을 계속하시겠다는 각오를 보이시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 말씀을 군중들에게 한창 인기가 높으셨던 공생활 초기 단계가 아니라, 점차 예수님에 대해 배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공생활 후반기에 발설하신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한결같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군중들은 자기들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돌아서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의 반응에 실망하시지 않고 ‘하느님 나라’가 반드시 큰 열매를 맺으시리라는 희망을 보이신 것이다. 목표의식이 뚜렷한 지도자는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려 간다.
예수님을 따르는 오늘의 그리스도인 역시 예수님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이다. 하느님을 믿다가 조그마한 시련이 닥쳐도 흔들리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위해 신앙을 가졌던가를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신앙인이야말로 참 신앙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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