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서 줏어다 공부시켰죠”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석진(요한.52.수원 권선동본당)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3월 22일 열린 경찰대 제22기 졸업식장. 수석을 차지한 맏 딸 고정은(아가다.22) 경위가 대통령상을 받는 순간, 고씨는 속으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딸의 경찰대 입학식 날 퍼렇게 멍든 손을 보고 눈물 흘린 지 4년 만에 다시 흘리는 눈물이다.
“아비가 돼서, 해준 것 하나도 없는데…” 수원시 권선동에서 작은 3급 자동차정비소를 운영하는 고씨는 “딸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딸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어렵게 시작한 자동차 정비소는 빚만 떠안았다. 딸이 공부할 참고서 하나 살 돈 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버려진 참고서와 학습지를 주워, 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 참고서로도 아무 불평 없이 공부해준 딸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공부할 여건은 최악이었다. 정비센터에 딸린 단칸방에서 고씨와 아내, 그리고 고정은 경위를 비롯한 3남매가 함께 지내는 형편에 남들처럼 번듯한 공부방 하나 마련해 줄 수 없었다. 학원 보낼 돈이 없어서 경찰대 진학에 필수적인 운동도 시키지 못했다. 고 경위는 자연히 경찰대 재학시절 동료들에 비해 공부는 앞섰지만 무술훈련과 구보 체육활동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운동에 전념, 유도 및 합기도 2단 자격증을 따냈다.
고씨는 이 모든 열매를 하느님께 돌렸다. “기도의 힘이 이렇게 놀라울 줄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고, 또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딸이 해냈습니다. 모두 기도의 은총입니다. 간절히 바라면 모든 것을 이뤄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에 놀라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4년째 본당 구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고씨는 “겸손된 마음으로 성당 봉사에 더욱 열심히 임해서 딸의 앞길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정은 경위는 앞으로 파견 형식으로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 학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제 딸이 사회에 봉사하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딸을 위한 아버지의 기도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설명
고석진씨(오른쪽)가 3월 22일 열린 경찰대 제22기 졸업식장에서 수석을 차지한 맏 딸 고정은 경위와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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