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색채화가
유다민족 이미지 시각적으로 표현
말년에 성경 성찰하고 화폭에 담아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이 1938년에 그린 작품 ‘흰색의 십자가형’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 죽음을 불러오는 극도의 공포를 반영하고 있다.
집들은 불타고, 마치 망가진 장난감처럼 파열돼 있다. 길 위에는 부상자들이 쓰러져 있고 핏빛 깃발을 들고 약탈자들이 횡행한다. 거룩한 공간, 출입구에는 유다의 사자와 다윗의 별이 서 있는 회당도 불타고 있다. 성나서 얼굴을 붉힌 한 남자는 팔에 나치 완장을 두르고 제단을 길바닥에 내던진다. 전쟁과 박해의 아비규환이 엄습하고 있는 세상, 피난처는 어디인가?
그런데, 그 한 복판에 흰색으로 채색된 거대한 십자가, 넓은 빛줄기가 십자가에 달린 분 위로 밝게 비춘다. 불타고 파괴되는 세상, 그 한 가운데에서 미동하지 않은 채 십자가에 달려 움직이지 않는 그분의 창백한 죽음은 극도의 역설을 이룬다.
1938년은 스페인에서 내전이 일어난 해, 독일에서는 유다인에 대한 쉼 없는 박해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이때 귀화한 프랑스인이며 유다인인 샤갈의 고향, 러시아 마을에 대한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가 태어난 비텝스크(Witebsk)의 유다인 거주 지역. 그 고향마을은 불탔고, 교회와 회당이 파괴됐으며, 유다인들은 쫓겨나고 살해당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작품은 나를 사로잡고 있는 나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이제 우리는 이 작품에서 샤갈이 유다인의 실존을 그리스도와 연관시킨다는 것을 발견한다. 유다인의 실존은 말 그대로 고향의 상실과 피난이다.
유다인이 하느님을 만난 것은 이스라엘이 떠난 이집트로부터 피난길에서였다.
고난과 파괴의 세상에서 그리스도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세상의 고통과 참상,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인들에게 저지르는 만행이었다. 그때, 그 파괴의 세상 한가운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뚝 솟았다. 예수가 겪은 고통, 유다인들이 겪는 고통, 그 고통의 연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유다인들은 형제가 되고 예수의 십자가가 유다 민족의 표상이 됐다.
유다인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샤갈의 작품에서 그리스도는 고난받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신적 존엄성의 표상이다. 이는 유다인에게 있어서 불가능하다. 그러한 표상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은 유다교 신앙에서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유다인의 형제가 됐다.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인들을 추방하던 시대에 한 유다인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민족에게 되돌렸던 것이다. 샤갈은 카시딤(유다교 신비주의)적 경건 전통 안에서 성장했다. 이 전통은 율법의 엄격한 준수보다는 마음의 내적 참여를 더 중시한다.
러시아 출신의 유다계 프랑스 화가. 이른바 20세기 최고의 색채화가로 손꼽히는 유다인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은 러시아 비텝스크에서 가난한 대가족의 일곱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유다인의 민족적인 이미지를 일생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한 예술가로서 그는 특히 말년에 성경의 세계에 대한 깊은 내적 성찰이 담긴 이야기들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에게 성경은 혼란한 세상에 구원을 담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나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샤갈의 성경 이야기 작품들은 그의 일생에 많은 역작을 남겼는데, 특히 프랑스 니스에 ‘국립 샤갈 성경 미술관’을 남겨주었다. 이 미술관은 1973년 단일 테마로 구성된 최초의 미술관으로 샤갈의 성경 관련 작품 8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에는 샤갈이 생전에 미술관을 위해 제작한 17점의 대형 성경 작품들과 모자이크가 상설 전시돼 있다.
어려서부터 뚜렷한 재능을 보였던 샤갈은 형상의 창조를 금하는 유다교에 거슬러 19세에 지역의 화가 예유다 펜의 공방에서 미술 작업을 시작했고 2년 후 성 페테르스부르크로 이사했다.
1910년 파리로 이주한 샤갈은 이곳에서 많은 전위 예술가들과 교분을 맺었고, 자신의 문화적 원천들을 독특한 전위적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겪으면서 그는 8년여 동안 비텝스크, 페트로그라드, 모스크바 등지에 머물렀다.
1920년 모스크바에 머물다 1922년 러시아를 떠나 베를린으로 이주한 그는 1년 뒤 다시 파리로 돌아갔다. 이후 왕성한 활동을 통해 프랑스 각지와 이집트, 팔레스타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폴란드 등을 포함한 여러 나라로 여행을 해온 그는 나치의 박해와 전쟁으로 인해 1941년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1948년 샤갈은 프랑스로 돌아와 2년 뒤 생폴드방스로 이주해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보낸다. 1946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그의 회고전들이 잇따라 열리면서 명성이 높아져갔다. 특히 1966년에 완성된 ‘성경의 메시지’ 연작은 가장 중요한 작품들로 꼽힌다. 1964년에는 파리 오페라 극장의 천장을 장식하고 뉴욕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극장에 거대한 규모의 벽화를 제작했다.
사진설명
20세기 최고의 색채화가로 손꼽히는 유다인 화가 마르크 샤갈은 말년에 성경의 세계에 대한 깊은 내적 성찰이 담긴 이야기들을 화폭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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