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부활
사월이면 한번쯤 중얼거려보는 엘리엇의 유명한 시, ‘황무지’의 첫 구절에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합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생명수 같은 봄비가 무감각하던 겨울뿌리를 흔들어 망각의 잠에서 깨워주는’ 사월을 왜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는지 이상합니다.
천지에 생명의 기운이 넘치고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사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 시인의 마음은 사월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짚어 보게 됩니다.
사월은 봄이 무르익어가는 때,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생명의 몫을 다하기 위해 죽음을 뚫고 살아나는 생명의 계절입니다.
생명의 계절에 생명을 피워내지 못하고, 사랑의 기회에 사랑을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삶은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의식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생명을 잃어버리고,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천지에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는 사월은 차라리 잔인하기만 한 것이라는 역설적인 표현 속에 담긴 시인의 마음에 동감을 하게 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죽은 나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나서 열매 맺어야할 삶의 목적도 잃어버리고, 참된 것을 식별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순수한 열정도 식어 버리고, 사랑의 능력을 놓쳐버린 인간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참된 것을 식별하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기 보다는 헛된 욕망을 채우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사는 삶, 사랑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자기중심적인 삶 속에 매몰되어 황무지처럼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월은 정말 가장 잔인한 달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견디어 내야할 희생과 시련을 두려워하여 새로운 삶을 열매 맺지 못하는 ‘죽은 삶’ (the living dead) 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활은 잔인한 것입니다.
‘알렐루야’를 노래하면서도 자신의 삶 속에 드리워진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희망을 잃고 절망의 늪 속에서 살아가는 삶에 부활은 잔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모든 것을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생명의 삶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삶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 우리에게 비추어주시는 희망의 빛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표지이고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확증이며 그 부활의 기쁨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부활의 의미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희망을 일구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를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이 두려워서, 겪어내야 할 고통이 아프고 싫어서, 때로는 감당해야할 현실이 너무나 부담스러워서 어둡고 무감각한 땅속에서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잠들고 싶어 합니다.
무덤에서 나오신 예수님께서는 잠들어 있는 무감각한 우리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십니다. 그러나 생명을 가져다주는 부활의 빛은 어둠에 익숙한 우리에게 너무 눈부시고 아려서 도로 눈을 감아버리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죽은 자처럼 살아가고 싶은’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부활의 노래는 차라리 잔인한 것입니다. 부활이 잔인한 것은 부활에 이르는 길이 십자가를 통한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를 짊어지기를 거부하는 닫힌 마음 때문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지 않고 썩지 않으려는 굳은 마음이 잔인한 것입니다. 닫힌 마음에는 사랑이 자리 잡지 못하기에, 굳은 마음에는 생명이 자라나지 못하기에 스스로 고립과 죽음의 길을 재촉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인생을 죽음 속에 살게 하는 잔인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빈 무덤을 바라보았던 제자들의 마음속에 부활의 희망이 자라나고 있었기에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었듯이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한 빈 무덤은 부활의 증거입니다.
모진 삶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은 그 자리에서, 기를 쓰고 살아도 자꾸만 뒤처지는 인생의 수레바퀴 앞에서, 나를 뒤흔드는 두려움과 걱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를 잠들지 않게 하는 것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우리는 참된 삶으로부터 우리를 마비시키는 망각의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며 부활은 잔인한 소식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은 생명과 환희의 계절이며, 주님의 부활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의 노래입니다. “주님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김영수 신부 (전주 용머리본당 주임 http://www.yongmeori.com)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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