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을 신화화하지 말자
황사영이 신앙에 투신하는 과정에서 일정하게 초탈주의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초월적 구원에 몰입할 경우 때로는 현실 인식의 부족을 드러낼 수 있다. 황사영이 교회 재건책으로 제시한 방안도 실제로 지극히 현실과 동떨어진 면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제사금지의 문화적 갈등
예컨대, 당시 교황 비오 7세(1800∼1823년)는 나폴레옹 정권하에서 시련을 겪고 있었다. 더군다나 교황은 청나라 황제에게 그런 청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청국 황제는 이런 문제로는 물론이지만 아예 교황과 대화할 정도의 국제 관계를 유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청국 황제가 설령 그런 청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응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단절 사태는 유럽의 교회 지도자들이 조상 제사와 공자와 같은 성현들에 대한 제례를 금지한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17세기에 개종한 중국의 천주교 신자들은 유교의 사당과 불상 등을 파괴하면서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폭력적 태도를 드러내기조차 했었다. 그리하여 중국 황제들은 이미 18세기 초부터 이런 서구 중심의 종교와 문화 우월주의를 제압하겠다면서 천주교를 금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다. 그들은 선교사들을 청국을 위해 직무를 수행할 수학이나 과학, 예술 관련 전문가로 채용하였다. 그런 가운데 단지 유럽인으로서 그들의 종교 관습을 지키도록 허용했을 뿐이었다. 유럽의 주교와 사제들은 선교사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백서에 진술된 내용에 따르면, 황사영은 천주교가 중국에서 제사를 금하면서 불러일으킨 문화적 갈등의 깊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사 문제와 동아시아 문화와 관습에 대한 폭력성이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불러일으켰고 이에 따라서 그 반감이 얼마나 격렬하게 형성되어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는 이런 갈등 구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추방과 박해를 겪고, 신자들이 처형당하였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당대 유럽의 정치 지형과 청과 조선, 청과 유럽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에서 볼 때, 그야말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을 마치 노력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방안인 듯이 진술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 시민의 정체성은 그리스도교적 정체성과 민족적 정체성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을 통합해 들여서 서로가 서로를 더욱 더 풍요롭게 결실을 맺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황사영의 초탈주의적 신앙 실천은, 박해라고 하는 위기에 직면하여 더욱 그러하였지만, 민족적 정체성을 보다 더 건강한 방식으로 받아안지 못한 면이 있다. 이것은 자기의 종교적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정립하지 못할 때, 그리스도교의 존재 이유 자체에 도리어 역행하는 모순을 부지불식간에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민족적 현실 제대로 파악못해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황사영을 신화화해서는 안된다. 그의 종교적 정체성에 비해서 민족적 정체성의 성숙도는 제한되어 있었고, 그의 민족적 현실 인식은 명백히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실로, 그 자신이 이미 심문 과정에서 고백하였듯이, 국제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제안들은 그가 민족과의 관계에서 드러낸 미숙의 한 뼈아픈 결과였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우리 교회는 정직하고도 철저하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당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황사영이 보인 유럽 교회에 대한 환상과 오늘 우리 교회가 서구 교회에 대해서 일정하게 노정시키고 있는 아류적인 면모들이 서로 어떻게 상통하는가를. 이런 겸손과 정직함을 통해서 우리 교회는 황사영의 저 순수와 열정, 그리고 목숨을 건 자기 믿음에 대한 충실과 동료에 대한 사랑, 그리고 민족의 미래에 대한 염려의 진정성을 바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황사영, 그가 지고 간 십자가의 무게를 모른 채 그가 넘어진 것만 보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채찍까지 쳐 가면서 그를 넘어지게 만든 자들만 웃게 할 따름이다. 이 사실은 우리 교회가 다시 건강하게 민족적 정체성을 자기의 신앙 실천에 통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겸손하면서도 용기있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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