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1일은 본지가 창간된지 77년째를 맞는 해이다. 아울러 올해는 한국 선교 200주년을 지낸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20년이 되는 1984년 5월 6일 200주년 행사가 이루어진 당시의 여의도 광장에 일백만명도 넘는 신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잡고 종일토록 이루어진 행사장을 깔끔하게 정리한 것에 대해 사회로부터 감탄과 칭찬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역대 교황님 중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찾아 오신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우리 선조들 중 신앙 때문에 목숨 바치신 순교자 103분의 시성식을 거행하셨고 온 세상에 선포하신 그 가슴 벅찬 장면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크게 드러나는 축제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거대한 물결이 일 듯 신자수도 급증하는 파고가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경과하면서 그 여파의 역작용도 만만찮게 일고 있어 교회내뿐만 아니라 대 사회적으로도 한껏 부푼 기대치가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 천주교회 공의회를 위한 의안 12개항목을 내 놓았다.
그 후 이미 여러 교구에서 교구 시노드(Synod)를 개최했고 그에 따르는 후속 조처를 차근차근히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시대적 요청으로 변화 되어 가면서도 신앙의 핵심이 되는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 중심(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가톨릭 신자의 생활이다.
수난 받는 하느님의 종처럼
때마침 올 창간 기념일은 예수 부활 대축일을 열흘 앞둔 목요일이다. 최후 만찬을 기념하는 성주간 목요일 1주 전이다.
으례히 이 때쯤부터 미사 전례를 통하여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중에 수난 받는 야훼의 종(제2 이사야서)에 관한 말씀을 많이 듣게 된다. 수난 받는 야훼의 종은 구세주로 파견되실 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한 마리의 양처럼 반항할 수 없이 묵묵히 자신의 길 - 파견된 사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 하느님의 종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새 삶 - 구원된 삶, 부활의 삶을 위해 겪어야 하는 온갖 시련과 고뇌, 급기야 목숨까지 받쳐야 하는 삶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의 종의 모습을 더듬으면서 77주년을 맞는 가톨릭신문의 갈 길을 찾고자 한다. 가톨릭신문이 창간된지 칠십칠년이나 됐다고 하지만 실제로 신문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일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취재, 편집 그리고 홍보 보급하는 직원)들은 그렇게 오래된 분들이 아니다. 부족한 경륜 탓으로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수천년간 쌓이고 쌓여온 삶의 지혜 -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고 전해 받는 전수의 고리가 끊어질 듯 경륜가의 부족으로 장구한 교회의 정통 가르침의 맥을 잇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절실함을 느낀다. 신앙지로서 또 주간지로서 신문이 겪는 어려움은 이 뿐이 아니다. 한창 신문을 아껴 주어야할 젊은 층들이 종이로 만들어진 신문을 대하기 보다는 인터넷(Internet)등 사이버(Cyber) 공간에 깊숙이 빠져 들고 있어 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엷어지는 독자층의 문제도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매주 구독중단 사유를 나름으로 분석하고는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서지 않는다. 답답한 나머지 본지의 역대 사장직을 수행하다 앞서 세상을 떠나신 분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 성직자 묘소를 찾아가 보기도 한다. 묘소내 중앙 제단뒤 육중한 돌로된 십자가의 받침돌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띈다. 라틴어로 기록된 마태오 복음서 24장 30절의 말씀이다. 『Tunc parebit signum Filii Hominis in coelo(그때 하늘에 인자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바로 그 십자가와 제단 앞에 누워 계시는 분이 있다. 본적은 불국(佛國), 1937년 5월 31일에 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 사람이지만 본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고 다만 한국 이름만 비석에 새겨져 있다. 장약슬(요셉) 사제이다. 바로 이분이 본지의 초대 사장직을 수행하신 분이다. 필자가 그 앞에 잠시 머물면서 조용히 물어본다. 초창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묵묵 부답 - 마치 수난 받는 하느님의 종처럼 아무 말이 없다. 다시 제단과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을』 바랄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지금의 그 모든 어려움을 감당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자문 자답하면서 돌아선다.
오늘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로
썩어 없어질 영광의 월계관이 아니라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써야 한다는 사도 바울로의 말씀이 생각난다. 언론의 기본인 비판의 창구를 활짝 열기가 무척 어렵다. 부분적이고 편협한 범위를 벗어나야 하는 보도와 그 취지를 살리기가 부담이 된다. 잘못된 정보와 비윤리적인 홍보 매체들과도 마주 서야 한다. 매일 범람하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속에서 예언자적 소명은 날로 깊어만 가고 서로간의 올바른 의사 소통을 위한 역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수한 노력과 숱한 실수 속에서도 사시(社是)로 정해 놓은 것을 되살려야 한다. 소식 보도, 보조일치 그리고 조국 성화로 정하고 있음을 우리 마음 속에 다시 떠올리면서 가톨릭신문이라는 큰 테두리 속에 머물러야 한다.
일상화되고 타성화되면서 둔감해지는 자신의 소명을 다그치면서 교우들의 신앙 생활에 실질적 성장과 성숙을 가져다줄 수 있는 신문이 되도록 매번 새롭게 다져가야 한다. 다른 한편 애독자 여러분은 우리 신문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는가를 살피고 무엇을 행할 수 있게 하는가를 찾으며 무엇을 바랄 수 있게 하는가를 앞당겨 생각하면서 보조 일치를 이루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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