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 시대의 큰 어른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신문 창간 75주년을 기념해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한국 교회와 우리 나라가 나아갈 길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추기경은 이날 인터뷰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과 교육문제, 통일 문제 등 현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해 평소의 소신을 피력하고 우리 스스로의 자각과 성찰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올해 국가적으로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 등 굵직한 국가적 대사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을 지적하고 자기 출세가 아닌,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봉사해 줄 것을 정치지도자들에게 촉구하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64년부터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되기 전인 66년까지 당시 가톨릭시보 사장 신부로 재직하며 가톨릭신문과는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사제생활 50여년 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가톨릭시보 사장 시절을 꼽을 만큼 가톨릭신문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여온 추기경은 창간 75주년을 맞은 가톨릭신문에 애정어린 축하의 말을 전하고 "앞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선교 사명을 구현하는데 더욱 앞장서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가톨릭신문이 4월 1일로 창간 75주년을 맞았습니다. 사장신부님을 지낸 추기경님으로서 신문에 또 후배 기자들에게 우선 축하의 말씀을 해주십시오.
창간75주년 감회 남달라
▶가톨릭신문 75주년 감회가 깊습니다. 진심으로 현재 사장 신부님을 비롯해 가톨릭신문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가톨릭신문의 성장에 큰 은총을 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초창기 가톨릭신문 발전에 헌신하신 윤광선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 분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가톨릭신문이 이처럼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창간 75주년을 맞아 특별히 윤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지난해 9월 12일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아 가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추기경님께서는 사제 생활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2년간의 본당 사목과 가톨릭시보 사장 시절을 꼽았습니다. 특별히 당시 가톨릭신문 사장으로 재직하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 이였는지요?
본당서 문전박대당하기도
▶가톨릭신문이 다양한 공의회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신문 부수가 많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구독료 받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당시 구독료는 개개인보다 본당과 교구를 상대로 했는데 저는 보급과 구독료를 수금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교구와 본당을 여러 차례 방문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떤 곳은 극진하게 잘 대해주고 또 다른 곳에서는 냉대와 푸대접이 심하기도 했었습니다. 어떤 본당에서는 제가 사제복장을 한 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문전박대를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럽기도 했지요. 그러나 다시 제가 사제인 것을 알고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고 일반 평신도들이 교회의 문턱을 넘기가 이처럼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어느 교구에서는 총대리 신부가 외국분이었는데 너무나 냉정하게 대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교구장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얘기하라고 하며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요. 저는 그때 신문 구독료를 받기 위해 교구장님을 뵈려던 참이였는데 분위기를 보니 이 신부님에게 이야기 해 보았자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 같아 저는 다른 경로를 통해 그곳 교구장님을 간신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교구장님을 만나자 그분은 따뜻하게 저를 반겨주셨고 제가 요청한 신문 구독료를 선뜻 내어주셨습니다. 어떤 때는 서울에 와서 혹시 광고를 좀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제약회사 등 가능성 있는 여러 곳을 방문했었는데 거기서 한 건의 수확도 얻지 못한채 맥이 빠진 적도 있었지요.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할수 있지만 그 당시는 신문사 가족들을 몹시 힘들게 했던 일들이지요.
-신문사 생활중 가장 보람있었던 일을 꼽으신다면?
바티칸공의회 보도 큰 보람
▶다행히 제가 신문에 있을 당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한참 진행 중이었는데 공의회에서 나오는 여러 소식들을 교회 안에 빨리 알려야겠다는 사명의식으로 열심히 일했었습니다. 특히 전 직원들이 합심해 공의회 문헌을 알리는 일에 모든 열정을 다 바쳤습니다. 그것이 기억에 남고, 그 때 공의회를 계기로 '열린 교회'가 되고자 하는 자성과 교회의 쇄신에 대한 인식이 우리 교회 안에서도 강하게 제기됐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이런 의미에서 타종교와의 대화 의미보다 타종교가 가톨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개신교를 비롯한 타종교의 유명한 저명인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설문 내용에는 "가톨릭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길 바라는가?" 라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요지의 설문을 타종교 인사들로부터 받아 신문에 게재했었습니다. 대부분 비판적인 내용이었지만 그 때 당시 불교의 높은 위치에 있던 분과 기독교사상 편집국장님의 경우 아주 신랄하게 가톨릭에 대한 비판의 글을 보내왔던 일입니다. 저는 그 글을 한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실었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신랄한 비판을 했던 그들도 대단히 놀랐습니다. 그 어떤 반론도 제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실었다는 것에 상당히 고무됐었던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우리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이런 글이 있는 그대로 실린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 왔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걱정하시던 어른들 중에 장면 박사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 저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내용인즉 "어떻게 이런 글을 신문에 게재할 수 있느냐? 걱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장박사님의 글을 받고 충분히 공감했고 아마 신문에 글이 실리면 그런 분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박사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편지에 "타종교인들이 우리 교회를 어떻게 보든 일단 이러한 의견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통해 그동안 타종교인들이 우리에게 오해했던 부분을 풀 수 있고, 이처럼 한 자도 고치지 않고 신문에 게재함으로써 가톨릭이 결코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박사님께 이해를 구했었죠. 그러자 장박사님께서 다시 편지를 보내 격려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공의회 소식 보도는 저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에게 새로운 사명감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제 사제생활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때가 바로 당시였어요. 그때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왔었습니다. 온 직원들이 즐겁게 생활했으며 부수가 오르고 수입이 늘면 모든 이익을 직원들에게 보장해주어 모두가 기쁘고 보람되게 일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집 없는 직원의 경우 집을 장만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었어요. 제 기억으로 사장 신부 마지막 때는 부수가 대략 1만5000부 정도까지 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부수로서는 상당한 부수라고 생각해요.
- 가톨릭신문은 한마디로 이 세상에 어떤 가치로 존재해야 하고 이 세상을 위해 또 교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 나가야 하는지요?
가톨릭신문은 교회를 위한 신문
▶ 결국 가톨릭신문은 교회를 위한 신문입니다. 교회와 함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충직한 사명감이 그 바탕이 돼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신문에 종사하는 모든 직원들은 성령의 보호하심 속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직원들은 진실을 밝히는 기자의식 뿐 아니라 사도직 의식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예전 교황 비오 10세는 특별히 교회 내 홍보 매체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현재 일간지들도 사회 정의 구현과 사회의 목탁이란 사명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가톨릭신문은 복음이란 기본적 가치관을 견지한 가운데 거기에 따라 살며 일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앞으로 가톨릭신문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종사자들이 사명의식을 가지고 복음정신에 입각해 세상의 빛이 돼야 하고 주님의 복음과 선교사명 구현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직원들이 기도 속에 일하고 성령께서 인도해주실 것이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분위기가 신문에 묻어 나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
-여러 차례 생명의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하지만 현 사회는 낙태, 사형제도 등 죽음의 문화가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합니까?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
▶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부귀영화가 있다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가치를 찾을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도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자기 목숨을, 즉 생명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냐?"라고 하심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은 육신생명만이 아니고 하늘과 다함께 하는 생명일 것입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이에 대한 가치관이 확고히 서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톨릭신문도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제가 호주에서 있었던 소중한 기억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나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어린이, 장애자, 노약자, 부녀자, 동물, 남자 이런 순서라고 합니다. 저는 그들이 참으로 훌륭한 가치관을 가졌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국에서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불행히도 그렇다고 할 수 없더군요.
현재 한국에서는 한해에 150만명의 어린 생명이 태어나기도 전에 낙태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남아 있는 어린 아이들도 키우지 못해 해외입양을 시키는 세계 1위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낳은 자식을 버리고 외국으로 억지로 보내는 셈이지요. 이래서는 절대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기본적인 가치관이 없으면 생명과 관계되는 자연환경을 깨끗이 보존하는데도 소홀해지고 아끼고 보존하는데도 소홀하게 됩니다. 따라서 효과적인 환경운동을 하려면 생명을 소중하게 인식하는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요즘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적 편견과 어려움 속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교회 안에서조차 자유롭게 처신할 수 있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는 어느 신부님이 어느 신자에게 부탁해 여러 명의 장애인들과 함께 집을 한 채 빌리려고 했습니다. 처음에 이 신자는 신부님 혼자서 그곳에 사는 줄 알고 선뜻 집을 빌려주려고 했다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냉정하게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현 정부 들어 사형집행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아 다행입니다만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 오셨습니다. 사형제도 폐지가 갖는 의미와 폐지이유를 설명해주십시오?
사형폐지는 생명존중의 정신
▶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 그 중에서도 인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악한 이웃을 돕고 살리는 인간애가 이런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통해 많이 함양되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사형은 죄의 벌로서 살인자를 응징하고 보복하는 의미가 큽니다. "네가 남의 생명을 빼앗으니 너의 생명도 빼앗겨야 한다" 이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의 생각이 깔려 있지 않나 생각 합니다. 이래서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아울러 사형제도로써 살인사건과 같은 흉악범을 줄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증명되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의 국가들은 모두 사형제도 폐지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오랜 경험에서 사형제도가 살인을 줄이는데 도움이 안되고 인간생명 존중의 가치관에도 위배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가 교육문제입니다. 교육이 이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입시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한 마디로 교육이 인간을 위한 교육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대학입시와 입신출세 그리고 부귀영화를 위한 교육에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피교육자의 인간다움, 인격형성을 위한 교육이 아니고, 피교육자로 하여금 돈이나 권력, 명예 등을 얻는 도구로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참된 의미의 조기교육이 아니고 전문 기술인을 만들기 위해 사교육비를 엄청나게 쏟아 붇고 있는 것이지요. 과외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학원이 많이 생기고 과외가 돈을 버는 수단이 되고 교육이 돈을 버는 수단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깊은 성찰과 함께 먼저 인간을 위한 교육을 함양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결코 교육이 대학입시, 더 나아가 자신의 입시출세를 위한 과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국가 차원에서 전반적인 교육 정책을 새롭게 하고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물론 우리 나라 교육열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에 오늘날 이처럼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점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공교육비보다 사교육비가 각 가정에서 훨씬 더 많이 지출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
- 정치적으로 올 한해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신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지도자를 뽑고 선택하야 하는지요?
정치는 正이다
▶ 정치는 정(正)이라야 합니다.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출세가 아니고 참으로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해 투신할 수 있는 사람을 물론 뽑아야 하겠지요. 이것은 그 사람의 인간됨에서 또는 그 사람 말의 진실성 여부에서 우리는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 장애인들을 실제로 위할 줄 아는 사람들을 뽑았으면 합니다. 없는 이들, 약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 눈에서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애정자(愛政者)라야 남북문제, 지역감정 등으로 찢어진 이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 특별히 정치 지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을 해주십시오.
욕망을 비워야
▶ 자기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언제나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 주실 것을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로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범으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 국민이 당신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별히 신자 정치인들은 신자다워야 합니다. 단지 성당에 열심히 다닌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본받고, 그 삶을 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봉사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봉사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공인인 신자 정치인들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르고 본받는다는 자세로 정치에 임해 주시길 바랍니다.
- 경제적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빈민은 갈수록 늘어납니다. 이의 해소와 완화를 위해 우리 교회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성당에서 위로 받을 수 있어야
▶ 교회 자체가 특별히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낮은자, 약자, 소외된 자를 소홀히 하지 않고 그들을 돌보는 마음가짐을 교회가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항상 교황님의 가르침을 비롯한 사회교리 회칙을 신자들에게 널리 가르치고 이러한 정신을 신자들 개개인의 삶 속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주저 없이 교회를 찾고 성직자, 수도자, 또는 지도급 신자들로부터 도움과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성당에 와서 소외당하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만큼 교회가 그들에게 따뜻하게 느껴져야 합니다. 그곳은 아버지의 집이니까요.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모든 이들이 성당에 와서 평화와 위로를 얻을 수 있도록 교회가 변화되는 일, 이것을 먼저 교회가 해야할 것입니다.
-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숙제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업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통일문제를 어떻게 전망하시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오랜 기다림 필요
▶ 지금은 통일문제를 전망하기가 참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통일에 대한 몇가지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통일의 방법으로는 적화통일, 전쟁을 통한 통일, 흡수통일, 평화통일 등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적화통일, 전쟁을 통한 통일, 흡수통일은 국민들이 받아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적화통일은 절대로 안되고, 전쟁에 의한 통일도 공감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흡수통일이 하나의 가능성으로써 현실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그러나 이것도 독일 같은 경우에는 가능했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가능해 보이지 않고 또 위험부담도 큰 것이 사실입니다.
독일의 경우에도 서독이 동독을 흡수해 통일을 이뤘지만 아직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과연 흡수통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북한의 2000만 국민이 남한으로 들어 왔을 때 이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현재 우리 나라에 들어온 얼마 되지 않는 북한 이탈주민들도 이곳에 살면서 온갖 편견과 소외로 인해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인 만큼 현실적으로 흡수통일은 불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평화통일이 제일 바람직한데 현재의 남북관계를 보면 현실성이 가장 적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확실하게 이것을 목표로 삼고, 인내하면서 화합과 협력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겠지만 목적은 달성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롯한 대북 정책을 평가해 주십시오. 아울러 현 남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 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평화통일의 길이 되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 실천에 있어서 모든 것이 타당했는지 여부는 깊이 검증돼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햇볕정책의 성과를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그런 의미의 결과는 보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 안에서는 '북한특수'가 확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 사업 등에 우리측에서 엄청난 돈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가 공들인 것에 비해 너무나 그 결실이 적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국민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인내하고 기도하며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햇볕정책이란 용어 자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북한측은 햇볕정책이란 것이 자신들의 체제 자체를 포기하란 뜻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화해와 협력이란 용어가 적절하다고 봅니다.
- 추기경님의 북한 방문을 수없이 희망하고 고대해 왔는데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필요하고 왜 지금껏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요?
아직도 북한방문 희망
▶ 그 전에는 현직에 있었고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방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큰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현직에서 은퇴했고 요즘 남북한 현실을 보면 참으로 어려워 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북한 방문에 대한 희망도 가지기 힘든 상황인데 만약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끝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 국민들과 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희망을 가지고 사랑으로
▶ 우리 각자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생활합시다. 또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삽시다. 우리가 이웃을 위하고 남을 돕는 사랑의 정신을 실천할 때 이 나라에 진정한 성령의 은총이 내리실 것입니다. 특히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 여성들을 돕고 아낄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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