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나뭇가지 연해지고
잎이 돋아나는 때는
돋아나는 때는
하늘이 눈을 뜨고
땅이 입을 여나니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어두운 데서 말한 것을
밝은 데 가서 말하라 해도,
귀에 대고 속살인 말을
지붕 위에 올라가 외쳐라 해도
큰소리로 외치지 못했나니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님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렸다고
온갖 덕목을 늘어놓아도
속된 거짓 맹세는 내가 알고 네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아나니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위선과 배반의 누더기옷을 벗고
홰를 치며 새벽을 회치는 수탉처럼
역사의 지붕 위에 올라가
가슴을 치며 외쳐라
백지 위에, 백지 위에 대고 외쳐라
보라색 옷을 걸치고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제 큰 탓이라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김형영(스테파노)
▲ 1966년 「문학춘추」신인상으로 등단
▲「문공부 신인예술상」「현대문학상」「한국시인협회상」등을 수상.
▲ 시집 「침묵의 무늬」「다른 하늘이 열릴 때」「홀로 울게 하소서」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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