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 위해
바르게 결단하고 영적 부를 쌓아야
계시에 대한 말씀들(마르 4, 21~25)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 두 가지(마르4, 26~34)
마르코 복음서에는 ‘메시아의 비밀’과 관련된 내용들이 자주 나온다.
“예수는 누구인가?”하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인데, 예수님께서는 평소 당신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누군가- 주로 귀신들이나 기적으로 치유된 사람들, 혹은 제자들- 가 당신이 누구신가를 알아차리고 발설하려고 하면 곧바로 함구령을 내리신다. 그래도 제자들에게는 따로 교육을 시켜 당신의 메시아로서 사명을 제대로 알아듣도록 이끄시는데 그런 특별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딴전을 피우기 일쑤이다. 아직 믿음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해설에 이어, 마르코 복음 4장 21~25절에는 예수님의 네 가지 토막말씀이 집성되어 있다. 예수님의 신상과 관련된 발언들이다. 우선“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21절)라는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이제까지 당신 신분을 감춰오셨지만, 세상의 등불로서 오셨기에 언젠가는 훤히 드러나게 되시리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초기 몰려드는 군중의 인기나 환호에 우쭐대지도 않으시지만, 앞으로 닥칠 곤경에 빠지거나 죽음의 위협에도 결코 동요하거나 도망치지 않으실 것이다.
사실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22절). 예수님에 관한 진실은 결정적인 순간, 곧 생의 최후 십자가 위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에 관한 계시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23절, 앞서 9절 참조). 마르코는 이를 또한번 강조하여 “너희는 새겨들어라.”(24a절)하고 당부하는데, 우리의 마음이 완고해진다면 귀가 있어도 들을 수가 없다.
24절과 25절에 나오는 세 번째, 네 번째 토막말씀은 종말의 보상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24절)라고 말씀하여 종말의 인과율에 대해 말씀하신 것 같은데, 마르코 복음사가는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24c절)라고 하여 현재의 선행보다 종말에 더 많이 보상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담았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25절)라는 말 역시 현재 영적 부를 쌓는 사람은 종말에 더 받게 되리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역시 우리 궁극적인 완성의 때, 곧 종말을 기대하면서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현재는 종말론적 전망 안에 놓여 있어야 한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4, 26~29)
예수님께서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 이 비유는 식물이 자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땅에 뿌려진 씨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럭무럭 자라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데, 작은 시작과 큰 결말이 큰 대조를 이룬다. 식물의 성장 과정 역시 인간에게는 신비롭기만 하다. 언제 어떻게 자라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강조점은 씨를 뿌린 농부가 곡식이 익으면 곧 낫을 대어 수확을 거둔다는 데 있다. 어쩌면 ‘인내로운 농부의 비유’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한데, ‘때’를 아는 농부는 씨를 뿌리고 스스로 자라게 놓아둔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케 하시고 짐짓 부재하시는 듯 당신의 권능을 별로 드러내지 않으시지만, 은밀히 당신의 나라를 성장시켜 마침내 종말의 성공으로 이끌어 가실 것이다. 따라서 종말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위해 현재에 바르게 결단하는 사람은 미래의 시간을 얻을 것이다.
겨자씨의 비유 (4, 30~32)
또한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아,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의 통치는 작게나마 이미 시작됐고 장차 강력히 영향을 떨칠 것이며 마침내 종말에 가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느님 나라(=다스림)’의 신비에 대해 이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문제는 지금 여기에서 그 구원의 신비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제자됨의 실천이야말로 구원의 신비에 다다르는 길이 될 것이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