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차원의 적절한 대응·지침을”
응답자의 절반 소설 ‘다빈치코드’ 읽어
“영화 개봉하면 관람” 56%…대비책 절실
신앙에 부정적인 영향 우려 목소리 높아
“이보다 더 거짓은 없다!”
지난해 3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한 공개 토론회.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관을 지낸 바 있는 제노바 대교구장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은 3월 16일 ‘다빈치 코드, 역사 없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두고 언론에서는 호들갑을 떨면서 교황청의 첫 공식 반응이며 입장 표명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 토론회는 그저 소설 ‘다빈치 코드’를 읽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아지면서 교구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인 목적의 주의 환기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었다.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성 토마스 대학의 종교학부 토마스 라이언(Thomas Ryan) 교수가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를 읽은 것은 최근의 일. 그 동안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전세계에서 4천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책이지만 그는 한갓 허구에 지나지 않는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을 별반 느끼지 못했다.
그의 지적은 매우 이성적이었고 예리했으며 신랄했다. 그는 이 소설을 일러 살인과 음모, 신비 같은 돈벌이에 아주 효과적인 요소들을 능숙하게 구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은 음모를 좋아한다”며 더욱이 그것이 신앙에 관한 것일 때 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그는 핵심을 찔렀다. “댄 브라운은 우리가 이 소설이 논픽션, 즉 사실이라고 생각하기를 원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허구일 뿐이다.”
그는 더욱 신랄하게 “이 소설은 특히 모든 페이지마다 거짓말로 가득하다”며 “전혀 사실이 아닌 분노에 찬 주장들”이라고 말했다. 또 이 소설이 “자기들의 주장을 강요하기 위해서 잘못된 증거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딜레마에 빠진 교회, 대응과 무시
하지만 이런 비판들은 종종 그 비판의 효력을 상실할 위험에 봉착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비판 자체가 오히려 그 비판의 대상에 대해 찬양과 고무가 되어버리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판이 오히려 관심과 화제에 불을 붙이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폄하하는 이런 정도의 소설이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오고 바티칸을 찾는 순례객들의 배낭 한 쪽에 웬만하면 한 권씩 꽃혀 있는 현실은 교회의 대응을 딜레마에 봉착하게 하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하잘 것 없는 주의주장에 그쳤던 내용들을 사람들이 마치 사실인 듯 받아들이는 상황, 진지한 신학적, 역사적 논쟁을 할 대상 조차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고 대응을 할 것을 고려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 자체가 교회로서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다.
영화 ‘다빈치코드’의 5월 19일 전세계적인 개봉을 앞두고 교황청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다빈치코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들을 돕는 일이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라며 “내 생각에는 교황청은 이 영화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나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이 이 소설을 읽었을 확률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분들이 성 베드로 광장으로 내려갔을 때, 수많은 순례자들의 배낭에 소설 ‘다빈치코드’가 꽃혀 있는 걸 보면 좀 놀라기는 할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다빈치코드에 매혹되는 걸 보면서, 어쩌면 교황청은 전통적인 전략, 즉 침묵함으로써 관심의 대상에서 밀어내는 식의 전략을 탈피해서 보다 적극적인 공세, 즉 다빈치코드의 오류를 지적하는데에서 더 나아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을 증거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수도 있을 것으로 일부에서는 생각하고 있다.
두 명 중 한 명 다빈치코드 읽어
전 세계적인 다빈치코드 신드롬은 분명히 우리나라에서도 드러난다. 5월 17일 칸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처음 공개되는 다빈치코드는 19일 전 세계적으로 개봉되며,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앞선 18일에 시사회 없이 개봉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 7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모독과 부활 부정, 기독교도의 명예훼손”을 이유로 국내 배급사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소설에서 피에 굶주린 권력집단으로 묘사된 오푸스데이는 일본 소니에 해명서를 요청하기도 했고 소니사는 이에 대해 영화의 내용은 사실이 아닌 허구임을 밝히기로 했다는 비공식적인 소식도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다빈치코드’가 가장 많이 팔려나갔던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소설이 다시 베스트셀러 수위권으로 오르는 중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었다. 가톨릭 신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가톨릭신문이 4월 10일부터 14일까지 닷새 동안 ‘가티즌’(가톨릭신자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소설을 읽었고, 절반 이상이 영화가 개봉되면 관람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총 657명이 응답한 이 조사에 따르면 “소설 다빈치코드를 읽어보셨습니까?”라는 질문에 301명(46%)이 ‘예’, 355명(54%)이 ‘아니오’라고 대답해 거의 절반에 가까운 가티즌이 이 소설을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질문인 “영화 다빈치코드가 개봉되면 관람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에는 절반이 넘는 364명(56%)이 ‘예’, 288명(44%)이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신자 가운데에서도 절반은 다빈치 코드를 소설로 읽었고, 그보다 많은 절반 이상의 신자들이 영화가 개봉되면 볼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의장 존 P. 폴리 대주교는 이러한 추세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다빈치 코드는 사람들의 종교적 관심을 신비현상에 대한 관심과 음모론 등을 한데 엮어낸 것”이라며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피상적인 종교적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이 책의 내용을 마치 복음처럼 여기고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속임수의 덫에서 벗어나야
그러면 과연 소설과 영화 ‘다빈치코드’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영향을 얼마나 미칠 것인가?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톨릭신문의 같은 조사에서는 “소설 혹은 영화 다빈치코드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의견과 ‘그렇다’는 의견이 비교적 비슷하게 나왔다.
115명(18%)은 ‘매우 그렇다’고 대답했고, 179명(27%)은 ‘그런 편’이라고 대답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45% 정도였다. 반면 “그렇지 않은 편”이라는 대답이 214명(33%),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106명(16%)으로 별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대답이 49%로 약간 높게 나타났다.
한편, 이러한 다빈치코드에 대해서 교회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압도적인 수의 응답자가 다빈치코드의 내용에 대해서 적절한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영화 다빈치코드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474명(72%)이 “내용에 대해 적절한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고 대답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있는 다빈치코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되며, 신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뜻을 표시했다.
그다음에 “아무런 조치나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110명(17%), “적극적으로 개봉을 막아야 한다”(56명, 9%)는 의견이나 “신자들이 보지 않도록 권고한다”(17명, 3%)는 식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어 영화 자체의 원천 봉쇄는 그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나 ‘다빈치코드’는 엄청난 판매량과 관심,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진지한 접근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하지만 침묵이나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효과적인 대응책이 아니다. 워낙 광범위하게 화제가 되고 있기에 그것이 주는 부작용은 꽤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대응은 문제의 핵심, 다시말해서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사소한 거짓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면 확대되고 재생산된다. 더욱이 그리스도교 진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까지도 건드리는 거짓에 대해서 교회는 이제 침묵해서는 안될 것이다.
※'가티즌'설문조사 결과 도표는 홈페이지 메인 화면 좌측 하단에 있는 "가톨릭 poll 가티즌에게 묻는다" 설문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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