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가정 위한 사목적 배려를”
이민자 출신 교회간 긴밀히 연대해야
공부방·어린이집 등 구체적 방안 필요
4월 30일은 교회가 국경을 넘나들며 이주를 거듭하는 이민자들의 영적, 신앙적 생활을 돌보기 위해 제정한 ‘이민의 날’이다.
교회는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내 이주민, 특히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목에 집중해 왔다. 각 교구별로 상담소와 쉼터 등을 마련해 이주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 힘써 왔으며 10여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성숙해 진 이주노동자 사목은 우리 사회 가장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활동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중심의 국내 이주민 사목은 나날이 바뀌어 가는 이주환경 속에서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4월 16일 올 3월말 현재 국내체류 외국인이 8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라면 올 해 말에는 체류 외국인이 100만 명을 초과하고 5년 내에 150만 명 시대가 올 것이다.
체류 외국인 증가의 중심에는 국제결혼이 있다. 국제결혼은 2005년 4만 3121건으로 전체 혼인건수의 13.6%를 차지했다. 서울과 경인지역이 전체 국제결혼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비교적 인구가 적은 농촌의 경우 국제결혼이 지난 해 전체 혼인 건수의 35.7%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7~8년 후에는 농촌초등학교 입학생 4명 중 1명 이상이 ‘결혼이민자 자녀’로 채워진다.
국제결혼여성은 올 3월말 현재 7만 7천 여 명. 이들은 우리와 함께 살며 자녀양육까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서울시 등 각 지자체가 ‘결혼이민자가정 지원센터’ 등 국제결혼한 부부와 자녀 대상 프로그램을 속속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게다가 국제결혼 가정 대부분이 사회의 ‘주변부’에 머무는 저소득계층이어서 이러한 프로그램이 열리는 지에 대해서도 모르고 참여율도 저조하다.
결혼이민자 자녀들을 위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도 미흡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결혼 이민자 자녀 중 초등학교 때 9.8%, 중학교 때 17.5% 정도가 차별,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학교를 그만 둔 것으로 나타나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국제결혼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이 시점에서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현재 교회 내에서는 대전교구 ‘모이세 여성의 집’이 국제결혼 여성과 가족을 위한 집단상담, 미사봉헌, 문화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해 문을 연 인천 ‘기쁨의 집’도 국제결혼 여성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이밖에 각 교구별로 들어선 이주노동자 관련 센터에서도 단발적으로 국제결혼가정을 위한 상담활동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사목에 비해 국제결혼가정을 위한 사목활동은 미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교구 ‘모이세 이주여성의 집’을 중심으로 서울대교구 ‘베들레헴의 집’, 인천교구 ‘기쁨의 집’이 손을 잡고 ‘결혼이민자 지원 연대’를 준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연대는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으로 고립된 국제결혼 여성 가정을 직접 찾아가 한글 등 한국문화 교육, 상담, 산후 도우미 활동 등을 가질 계획이다.
대전교구 이주노동자 사목 강승수 신부는 “국제결혼 가정 증가에 대비한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 미비한 가운데 결혼 이민자 지원 연대 활동 등 교회의 사목적 움직임이 보다 활발해 진다면 유리한 점이 많다”며 “교구 관련단체 뿐 아니라 개별 본당에서도 조금만 더 마음을 열고 국제결혼가정을 공동체 식구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연대 활동이 보다 확산돼 교회 차원의 사목기구로 발전돼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결혼이민자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집 마련, 공부방 운영 등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목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국제결혼 가정을 교회의 울타리로 끌어 들이는 노력과 더불어 이주노동자들이 국내 체류기간 동안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할 교회 사명도 빼 놓을 수 없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이민의 날 담화에서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민 사목 종사자 파견이라는 이민자 출신교회의 사명을 언급하고 아울러 받아들인 교회와 출신 교회 간 긴밀한 대화를 강조했다.
현재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내에는 필리핀, 중국, 베트남, 남미, 태국, 몽골 공동체가 만들어져 있고, 각 공동체에는 출신 교회에서 파견된 성직자와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5명의 성직자가 파견된 필리핀 공동체는 서울 혜화동 등 지역 공동체별로 매주 미사를 봉헌하고 전례력에 맞춘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필리핀공동체 담당 장글렌 신부는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에 익숙한 신부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생활하는 것은 타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며 앞으로도 이주노동자 출신교회가 더 많은 성직자를 파견해 공동체를 꾸릴 수 있도록 한국교회와 아시아 등 각국 교회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베트남 공동체의 경우도 요셉 팜 신부가 한국에 부임한 이후로 주일 미사 참례자가 급격히 늘고 공동체 활동도 활발해 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서울 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동체 마련과 출신교회 사제들의 파견협조가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올 이민의 날 담화에서 이민은 세계화에 강한 영향을 받은 ‘시대적 징표’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도 시대적 징표와 변화에 걸맞게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사회의 한 구성원임을 생각하고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주민 사목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결혼가정이 우리 사회 내에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목 방안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물질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데만 만족해왔던 이주노동자 사목도 그들이 신앙생활을 보다 충실히 하며 우리 교회의 일원으로 머물 수 있도록, 스스로 공동체를 꾸려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함께 사는’ 사목으로의 변화가 필요한 때다.
■인터뷰/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장 이병호 주교
“세계화에 맞갖은 안목 가져야”
“국민 전체가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국제사회에 맞는 의식을 갖춰 나가야 합니다.”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병호 주교(전주교구장)는 세계화로 인해 이민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실과 그에 부합하는 의식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지난해 이주사목위원회 책임을 맡은 후 처음 세계 이민의 날을 맞은 이주교는 ‘세계화’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진단과 함께 이에 맞갖은 안목을 가져야 함을 역설했다.
“신앙인의 감성은 남달라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하느님의 안목으로 우리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주교가 역설하는 신앙인의 감성과 시야는 시대의 징표를 바라보고 세상을 대할 수 있는 눈길에 닿아있다. 우리나라로 이주해오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시각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세대를 더해가며 이어질 수 있는 인간적 문제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50만명에 이르는 이주노동자와 20만에 육박하는 국제결혼 가정을 본다면 우리 역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는 게 이주교의 생각이다.
이주교가 강조하는 국제사회와 인류를 향해 열려진 시야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느님의 법’이다. 이같은 생각에 이주교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누구보다 높아야 하는 이들이 신자들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느님 아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심을 믿는 이들이 신자들입니다. 이런 믿음이 보편적 인권을 주장하는 가장 큰 바탕이 됩니다.”
이주교는 나아가 국익이라는 명목 아래 인권에 반하는 각종 이민 정책들이 수립되고 시행되는 가운데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고 이런 세계화의 그늘을 지워 나가는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상위의 법인 하느님의 법, 자연법을 어기고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만 매달린다면 다음 순간 국가 이익을 정면으로 허무는 방식으로 그 결과가 돌아올 것입니다.”
더욱 가속화될 이주와 이민. 이주교는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신앙적 성숙을 이뤄나가야 할 과제가 오늘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주어지고 있음을 들려주고 있다.
사진설명
▶국제결혼 가정을 위한 교회 차원의 사목적 배려와 지원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노동사목위원회가 마련한 베트남 근로자 일곱쌍의 혼배미사 장면.
▶추석명절을 앞둔 지난해 9월 26일 인천 서운동본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본당 신자들과 함께 송편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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