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위해 권리와 의무 내세우자
한 정치 유력 인사의 4억원이 든 사과상자 수수 현장이 적발돼 조사 중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내용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지만, 우리나라 정치 현장에서 이런 류의 사건들을 국민들은 적지 않게 들어왔기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여전히 이러한 행태가 이뤄지고 있다는데 극도의 실망감을 느낄 뿐이다.
5.31 지방선거의 공천 과정이 ‘돈’으로 얼룩지고 있다. 이미 4억에 앞서 또 다른 2명의 거물 정치인이 거액의 공천 로비를 받은 사실도 드러난 바 있다. 그 외에도 공천 로비와 관련한 제보와 첩보들이 난무하고 이에 따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조사도 수두룩이다.
기초단체장과 광역, 기초의원 후보 선정 과정에서 돈 로비가 횡행, 지금 우리 정가는 곳곳이 지뢰밭이다. 살짝만 밟아도 돈 냄새가 진동하는 지뢰가 터져버릴 것이 분명하다. 국민들의 공동선을 위한 노력, 깨끗한 정치는 안중에 없고 ‘공천 장사’에 여념이 없다.
정치 세계에서의 부정과 부패는 이제 어느 정도 정치의 민주화가 진전된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가장 먼저 척결돼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로운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세상에서의 불의, 공동선을 저해하는 정치적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투신해야 한다. 특별히 공동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도구인 선거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그리스도교적,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소명과 의무로써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은 제75항에서 시민으로서의 이러한 권리를 분명히 언급한다.
“모든 국민은 공동선의 촉진을 위하여 사용하는 자유 투표의 권리와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문헌은 다음 항에서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분야에 있어서 서로 독립적이며 자율적”이라고 말하지만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교회는 우리 사회, 정치와 관련해서 부정과 부패의 현상에 대해서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윤리적 판단에 근거해 시민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인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필리핀 주교단과 만난 자리에서 “사회와 정치 발전을 위협하는 부패의 죄악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며 부패한 사회의 변혁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으며, 이러한 원칙과 가르침은 교회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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