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소리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온 마음을 다 기울여야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심(5, 21~43)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병고와 죽음의 고통이 아닐까?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는 이야기는 병고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준다. 생명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인간의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 줄 것이다.
이 두 일화는 본래 서로 연관이 없었는데, 전승과정 혹은 마르코 복음서가 씌어질 때 하나로 묶인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의 전개는 야이로라 하는 회당장이 자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와서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에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큰 군중이 무리를 지어 야이로의 집을 향한다. 이 때 열두 해 동안 하혈로 고생하던 부인의 이야기가 끼어든다.
이 여인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26절)는 표현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하고많은 병중에서도 하혈은 남모르게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데 더 큰 어려움이 있다. 하혈하는 여인은 부정(不淨)하게 취급되어 타인과의 접촉이 금지되었다.
이 여인이 열두 해 동안이나 부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면, 이 여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회는 물론 가족으로부터도 고립되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병고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은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구원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자 과연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 역시 자신의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알아채신다.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기적에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5, 34)하고 치유가 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시켜 주신다.
그러는 사이에 회당장의 딸의 병은 악화되고, 회당장의 집에서 딸이 죽었으니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전갈이 온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36b절)고 당부하신다. 과연 회당장에게 하혈하는 부인과 같은 믿음이 있는 것일까?
초상이 나서 소란스러운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잠과 죽음의 경계가 예수님 손안에 있다.
“탈리타 쿰!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41절)
예수님은 부활의 빛으로 죽음에게 명령하신다. 죽음의 어둠은 가시고 소녀는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니게 된다.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신다. 죽음에서 소생한 소녀는 이제 어엿한 여성으로 성장하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이 중요한 사건의 증인이 된다.
나자렛에서 배척을 당하심(6, 1~6a)
앞서 3, 20~35의 “베엘제불 논쟁과 참 가족에 대한 가르침”에 연결되는 이 이야기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6, 4)는 결론을 이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 방문을 가셨을 때의 일이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놀라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2절)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고작 그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형제이며 직업이 무엇이라는 정도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는 그들을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될 뿐이다. 그러한 그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고 그들의 불신에 놀라셨다고 한다(5~6절).
오늘날 섣부른 나의 생각과 판단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분에게서 내가 만들어놓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의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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