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그날까지 나눔 다짐”
10여년간 남북 우애·신뢰 쌓은 결실
민화위 지원하는 국수공장 등 방문
[전문]
민족 화해의 씨앗을 뿌리고 하나되는 미래를 향한 여정을 앞장서 헤쳐 온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민족 복음화의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서울 민화위는 위원장 최창화 몬시뇰과 본부장 장긍선 신부 등 61명으로 방북단을 구성, 4월 26~29일 3박4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그간 민화위 차원에서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북한 방문이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후원자들을 포함한 단체 방북이 이뤄지기는 지난 1995년 3월 1일 민화위 설립 후 처음이다.
이번 방북에 함께 한 이들은 사랑이 복음정신의 핵심이자 화해의 밑거름임을 재확인하고 신앙의 힘으로 민족의 앞날을 헤쳐나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충성당서 말씀의 전례 거행
◎…4월 26일 오전 서울 김포발 북한 고려항공편으로 평양 순안공항을 통해 북녁땅에 첫발을 내디딘 방북단은 만경대와 인민대학습당을 돌아보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평양 장충성당에서 최창화 몬시뇰 주례로 북측 신자들과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며 북녘 교회와 첫 대면했다. 최몬시뇰은 “서울 민화위가 발족 이후 11년간 북측 교우들은 물론 동포들과 많은 정을 나눠올 수 있어 매우 감격스럽다”며 “그간 쌓아온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된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튿날 오전 방북단은 10명의 대표단을 중심으로 위원회가 지원, 운영해오고 있는 남포의 국수공장을 방문한데 이어 오후에는 평양시 동대원구역 새살림동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 내 어린이영양제생산공장을 방문해 그간 민화위가 전해온 사랑의 결실을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다.
통일의지 되새겨
◎…28일 이들의 발걸음은 묘향산을 향했다. 방북단은 국제친선전람관과 북한 최대 규모의 사찰인 보현사를 방문, 우리 산하에 서린 분단의 아픔을 돌아보며 통일의 의지를 되새겼다. 일정에 함께한 이들 가운데는 이산가족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1948년 공부하러 남쪽을 찾았다 58년만에야 고향땅인 평양을 다시 밟은 진경선(요한.77.서울 연희동본당)씨는 “먼발치서만 고향을 바라볼 수 있어 안타까움이 적지 않았다”며 지난 세월을 회고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하루빨리 하나가 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쉽기만 한 나흘간의 일정을 되짚어 나오는 길은 새로운 미래를 엿보게 한 장이기도 했다. 부인 심문경(마리아.64.서울 옥수동본당)씨와 함께 처음 북녘땅을 찾은 김일규(요셉.69)씨는 “오랫동안 북녘 동포들을 도와오면서도 막연하기만 했는데 이번 방북을 통해 그 사랑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기회가 돼 더 많은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며 통일의 그날까지 기꺼이 희생과 나눔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했다.
■남궁경 신부의 북한 방문기
“나의 살던 고향은…”
어디선가 나지막한 소리로 동요가 들려온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동심을 담은 동요는 늘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해 준다. 그 노랫소리에 모든 감각이 쏟아진다. 금새 노래의 주인공을 찾아낸다. 평양 시내를 지나 묘향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할머니 수녀님들이 나란히 앉아 부르신 노래.
숙소인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곳에 대한 추억들이 버스 안에 가득 찬다. ‘평양교구 주교좌 관후리성당, 기린리, 대동문, 칠성문, 서포, 룡성, 순안, 안주…’ 이런 단어들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 부모님들의 추억이 담긴 곳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방 후 어수선한 시절의 아련한 추억, 벌써 팔순을 넘긴 노 수녀님들의 기억이 단어들로 지나간다. 어릴 적 평양 기찻길을 지나 집에 가던 추억, 그 길가에 있던 수녀원 수녀님들의 체조하는 모습, 난리통에 고행성사를 보기 위해 수녀원에 왔던 일들. 이렇게 수녀님들의 입에서 추억이 쏟아진다.
어느 수녀님은 이번 여행을 오기 전에 평양 출신 수녀님 무덤 앞에서 이런 기도를 바친 분이 있다. “수녀님, 평양에 다녀오겠습니다. 다음엔 수녀님도 본원이 있던 평양에 묻히세요.”
이번 평양 방문은 북측 조선카톨릭교협회(위원장 장재언 사무엘)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초청해 이뤄졌다. 지난 10여년간 서로 우애와 신뢰를 쌓은 결실이기도 한다. 그래서 서울 민화위 지원사업인 국수공장과 어린이영양제생산공장을 모니터링할 예정이었다. 우리가 동명왕릉을 돌아보는 동안, 방문단 대표 8명은 국수공장을 보러갔다.
북측에서 영화를 찍는지 많은 사람들이 분장을 하고 동명왕릉 옆에 모여 앉아 있다. 안내원의 해설에 보다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붉은색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아마도 고구려시대의 사극영화를 촬영하는가 보다. 들어가는 길에 분주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금새 조용해진다. 지금은 쉬는 시간인가.
우리 일행은 지난 4월 26일 오전 9시20분 김포발 비행기로 서해안 바닷길을 통해 1시간을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 순안공항을 거쳐 평양 시내를 들어오는 길은 조용했다. 특히 인상적인 모습은 거리의 나무들. 언뜻 보면 벗꽃같지만, 자세히 보면 분홍색 빛이 나는 살구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평양 시내에는 벗꽃을 심지 않는다고 말한다. 수줍은 처녀처럼 살구꽃은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 한민족에게 벗꽃이 담고 있는 의미를 누구보다 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시작한 이번 방문은 서서히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쉬움이 쑥쑥 자라나는 가운데 서울로 떠나기 전날인 4월 28일 우리는 묘향산을 찾았다. 평양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짙은 안개가 우리를 품에 삼켜버린다. 이런 모습이 답답했는지 북측 안내원이 마이크를 잡는다. 북측 지평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북측 행적구역상 평안도가 있는데, 이는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평양시와 안주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단다. 강원도가 강릉과 원주에 따왔듯이 말이다.
여행은 늘 추억을 남긴다. 자연과 음식에 대한 기억도 있지만, 그곳 사람과의 만남에서 얻은 인상이 더 크게 자리잡는다. 큰물피해 이후 참 힘들었을 텐데, 잘 견디고 있는 모습이다. 조금은 여유가 풍겨져 나온다. 민족의 화해 가능성일 것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의정부교구 민족화해 담당
사진설명
▶방북단 일행이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해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북한 노동자들이 서울 민화위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영양제생산공장에서 영양제 생산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민족화해위원회 본부장 장긍선 신부가 평양 인민대학습당 발코니에서 방북단 일행에게 평양교구 관후리 주교좌성당 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남궁경 신부(맨 앞쪽 두번째)가 방북단 일행 및 장충성당 신자들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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