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과학의 ‘대상’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과학기술이라는 독특한 문화형태에 의해 틀 지워져있다. 과학기술을 떠나 우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으며, 그 성과를 벗어나서는 하루라도 제대로 살아가기 조차 힘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처럼 학문전부가 과학에 따라 이해되고, 그 학문적 성과를 실용적으로 현실에 적용하기 시작한 과학기술주의는 사실 18세기, 또는 빨라야 17세기 후반 유럽에서 이루어진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 생명에 권한없어
문제는 이로써 생명과학기술이라는 형용모순의 말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분명 인간은 생명을 만들거나 생명의 문제를 결정할 능력도 권리도 지니고 있지 않다.
생명과학은 단지 생명현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학문분과에 지나지 않고, 그 기술 역시 의료 현장에 적용된 몇 가지 실제적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이 진리의 준거가 됨으로써 마치 생명에 대해 모든 지식과 권리를 소유한 듯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생명을 창조라도 한 듯이 생각하여, 생명의 문제를 결정하고, 생명을 자신의 지식과 능력에 따라 마음껏 다룰 수 있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과학의 다른 영역처럼 생명은 과학기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생명의 존엄성을 말하고 생명이 과학기술의 대상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특정 종교의 신념에 따른 주장이 아니다. 마치 가톨릭교회는 생명과학을 반대하고 불교계는 생명과학을 지지하는 듯이 비쳐진다면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과학기술주의 문화 비판
그리스도교가 생명과학기술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은 그 생명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며, 그 생명이 과학기술의 대상이 되면, 우리 자신이 그러한 기술의 대상이 될 것이란 사실의 지적일 뿐이다. 마치 생명과학이 생명에 대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생명공학이 생명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과학기술주의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생명과학기술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룬다는 생각도 천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누가 우리의 생명을 대상으로 해서 돈벌이를 할 권리가 있는가.
예를 들어 한국인에게 특별히 존재하는 유전자 서열을 밝혀 위암 진단제를 만든다는 듣기 좋은 말은 우리 몸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특정 회사나 단체가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는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경고가 의료기술이나 생명과학의 올바른 발전을 거부하는 일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생명과학과 의료기술의 올바른 발전은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그리스도교는 그러한 사실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
생명과학기술은 생명을 살린다는 측면과 반대로 언제라도 생명을 파괴시킬 수 있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특정 종교가 아니라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종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 지켜야
생명을 ‘대상’으로 삼으려는 모든 행위에 대해, 생명을 경제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니라고 말해야한다. 더불어 생명과학기술의 올바른 발전을 막는 어떠한 잘못된 의도나 행동도 경계하고, 비판해야한다. 그래서 생명과학이 올바르게 발전하고,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 생명을 존중하는데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 과학기술과 자본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한 수단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종교와 학문은 물론이고 생명의 권리와 아름다움에 감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보편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위임된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길이며, 동시에 모든 인간의 의무이기도 하다.
생명을 보존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개별적 신념에 따라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과학기술에 종속되고 말 것이며, 생명은 파괴되고 심지어 멸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승환(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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