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체계적 이주노동자 사목 놀라워
병원·탁아방·상담소 찾아 이주노동자 아픔 함께 나눠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수녀 100여명이 ‘현대 사회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화두로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 의왕 아론의 집에서 4월24일~5월 4일 열리고 있는 제14차 AMOR(아몰, Asia Oceania Meeting of Religious Women, 아시아 오세아니아 여성 수도자 모임) 회의. 수녀들은 이 기간 동안 아시아 지역 수도자 연대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고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4월 27~29일 3일간 10개 그룹으로 나눠, 소외된 지역 구석구석을 다니며 한국사회를 체험했다. 원불교 익산 총부와 전국 각지의 불교사찰을 견학했고,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기념관, 솔뫼성지, 제3땅굴, 농업기술센터, 새만금 갯벌, 한국 여성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본지는 이 중, 이주 노동자 분야에 관심을 표명한 수녀들과 동행, 그들의 기도와 열정에 함께했다.
4월 28일 오후 4시. 경기도 부천 이주노동자 상담소 ‘국경없는 친구들’을 네팔, 말레이시아,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국경없는 수도자’ 10여명이 찾았다. 예상보다 1시간 늦었다.
정순옥 수녀(프라도 수녀회) 등 ‘국경없는 친구들’에서 공동사목하고 있는 수녀들이 반갑게 맞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룹을 인솔한 강성숙(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수녀가 경기도 발안에 있는 이주 노동자 병원과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이주 노동자 자녀 탁아방을 둘러보면서 시간이 지체됐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동포를 만난 수녀님들이 그들과 손을 잡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어요. 이국에서 수녀와 평신도가 함께 만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차마 일정을 서두르자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하지만 수녀들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주 노동자 인권 노동문제 상담, 심리 신앙상담, 이주여성 권리보호, 한글 및 문화교실 운영 등 ‘국경없는 친구들’의 활동 내용에 대한 안내를 듣는 동안에도 질문을 계속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공통된 반응은 ‘놀랍다’였다.
말레이시아 국적의 도로시(Dorothy Khaw, 착한목자수녀회) 수녀는 “한국교회가 이주 노동자들에게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도움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메리놀 소속으로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틴(Christine Ortis) 수녀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들에 한국 자원봉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또 많은 이들이 금전적으로 후원한다는 사실도 특히 놀라웠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의 미탈리(Mitali Mree, 거룩한 십자가의 수녀회) 수녀도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외국인들에 대해 한국교회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두 손을 모았다.
잠시 후, 베트남과 태국에서 온 남녀 이주 노동자 4명이 국경없는 친구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수녀들이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그리고 의자를 바짝 당겨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 “한국 사람들이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느냐.” “몸 아픈 곳은 없느냐.” “돈은 얼마를 버느냐.” “부당한 대우는 받지 않느냐.” “월급은 제대로 받고 있느냐.”
질문이 쏟아졌다. 이주 노동자들이 ‘현실’로 대답을 대신했다. 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졌지만 마땅한 보상도 받지 못한 20대 여성, 뇌졸중으로 쓰러져 생계가 막막한 30대 가장, 모아 놓은 돈도 없는데 당장 강제 추방 당해야 하는 20대 청년…. 수도자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마치 자기 일 처럼 가슴 아파했다.
그 모습에 윌라이(Wilai Sokumpang, 28, 태국)씨가 수녀들에게 말했다.
“힘든 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요. 하지만 이곳 사람들(국경없는 친구들과 한국 자원봉사자들)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늘 편안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그동안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윌라이씨의 자신 있는 말과 웃음에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국경없는 사람들은 어느덧 하나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하느님 은총을 구하고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남북분단 이주노동자 환경생태운동… 현장에서 ‘사명’ 묵상
■아몰(AMOR) 회장 마리아 빈센트 수녀
“수녀님들의 에너지가 한 단계 ‘업’(up) 됐습니다.”
AMOR 회장 마리아 빈센트(Mary Vincent d’ Souza, 활동갈멜수녀회, 인도) 수녀는 현장체험 이후 AMOR 회의장에는 체험에 대한 나눔 열기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어떤 수녀님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또 어떤 수녀님은 한국내 이주노동자 문제를, 또 다른 수녀님은 환경 생태운동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수녀님들은 이밖에도 한국내 다양한 종교를 체험하고 한국 역사를 배우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 모든 체험들이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 감동의 원천에는 하느님 사랑이 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모임이,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가치있는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이론적으로 ‘수도자의 사명’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속에서 그 ‘사명’을 몸으로 체험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장 체험을 통해 한국 수도자들이 이 사회에 문제점과 필요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수도자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빈센트 수녀는 개인적으로 파주 예수마음 배움터 피정의 집을 방문, ‘영적 리더십’에 대한 현장 체험을 했다. 영성적 전통이 강한 인도의 수녀다운 선택.
한국인들에 대해 친절하고 열정이 많고, 그 어떤 것도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정도로 진취성이 강한 모습을 보았다는 빈센트 수녀는 “단순히 돈만 좇으며 바쁘게 사는 것으로 알았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피정과 영적 기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폐막식에서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인 빈센트 수녀는 또 “이번 한국 AMOR 회의는 우리가(수도자들이) 세상에 축복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남은 일정을 통해 마리아의 마음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아시아의 고통에) 더욱 적극적·능동적·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 AMOR 회의는
AMOR 회의는 1971년 ‘정의를 위한 행동이 복음화의 본질적 요소’라는 세계 주교 시노드 천명에 대한 구체적 응답으로 시작됐으며, 3년에 한 번씩 각 나라를 돌며 열리고 있다.
이번 14차 회의는 한국에서 21년 만에 열리는 것으로 오는 2009년 제15차 회의는 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사진설명
▶4월 28일 경기도 부천 이주노동자 상담소 ‘국경없는 친구들’을 방문한 AMOR 회의 참가 수녀들(왼쪽 2명)이 이주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MOR 회의 참가 수녀들이 4월 30일 의왕 라자로 마을에서 열린 성체대회 거동행렬에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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