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참된 증인으로 삼고자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파견
6. 열두 제자의 파견 (6, 6b~13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을 대할 때마다 옛 일이 생각나서 피식 웃는다. 수련기 때 탄광촌으로 사도직 여름 실습을 갔었는데, 길을 떠날 때에 이것저것 챙기지 말라는 복음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라 하느라 옷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쌀쌀한 날씨에 감기로 한참을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예수님 말씀을 어설프게 알아듣고 문자 그대로 흉내를 내다가 곤혹을 치른 셈이다. 나 같은 돌팔이 초심자에겐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속담이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열두 제자의 파견 이야기는 오늘날도 교회 공동체가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중요한 지침을 마련해 준다. 앞서 제자들을 부르시고(1, 16~20), 열두 제자를 선택(3, 13~19)하신 이야기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목적은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도록 파견하시는 데에 있다(3, 1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복음의 참된 증인으로 삼고자 당신 친히 파견하신다. 이들이 둘씩 짝을 지어서 전교활동을 한 것은 증언 내용에 대한 진실성을 말해 주는 일종의 관례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한을 대행할 수 있도록 악령들을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6, 7).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는 악의 힘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주신 여행채비에 관한 지침(6, 8~9)과 전교여행 중 지켜야 할 규정(6, 10~11)은 예수님과 동행했던 제자들은 물론, 전도여행에 전력을 다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첫 번째 훈시는 사명 수행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에 대한 애착을 갖지 않도록 촉구한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지팡이와 신발만은 허용하는데, 이는 당시 팔레스티나 밖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여건상 맹수와 강도를 물리치고, 가시나 돌이 많은 땅을 돌아다니기 위해서 지팡이와 신발이 꼭 필요했던 점을 보여준다. 두 번째의 훈시는 유랑 전도사들이 전도여행을 갔을 때 머물게 되는 가정교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통상 전도사들에게 공동체에서 숙식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때 전도사들이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파견된 자로서의 사명을 잃지 말라고 촉구한다. 전도활동이 거절될 경우에는 발의 먼지를 털어 그들에게 증거가 되도록 하라고 하는데(11절), 이는 절교를 뜻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개개인의 결단이 요청되는 구체적인 행위이다.
7. 삽화: 예수님의 신원과 세례자 요한의 죽음 (6, 14~29)
열두 제자의 파견(6, 6b~13)과 파견된 제자들의 귀환 보고(6, 30~32) 사이에 놓여 있는 이 단락은 헤로데 안티파스 왕을 매개로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사람들의 여론(14~16절)과 세례자 요한의 죽음(17~29절)을 전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에 대한 보고는 복음서의 전체 구성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요한의 등장과 함께 메시아의 선구자로 다시 오리라는 예언자 엘리야의 귀환이 실현되고, 또 그의 종말이 예수님의 죽음을 예시하는 역할을 한다(9, 11~13).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났다.” “엘리야다”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라고 답한다(14~15절). 그러나 헤로데 안티파스는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6, 16)라는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이는 군중의 여론을 듣고 신앙고백을 한 시몬 베드로(8, 29)와는 매우 대조적인 행동이다.
전설처럼 회자되던 세례자 요한의 죽음 이야기는 등장 인물들의 묘사가 돋보여 문학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
세례자 요한은 율법에 충실한 예언자로서 헤로데 안티파스와 헤로데(마르코의 필립보는 오보임)의 아내 헤로디아의 불법적인 결혼을 고발하고 이를 대담하게 증언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반면, 불법적인 결혼을 감행한 헤로데의 공범자, 헤로디아는 기회를 틈타 요한을 죽음의 곤경에 이르게 하고, 사악하고 유약한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20절)으로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체면 때문에 무고한 예언자를 죽인다.
이러한 헤로데의 모습은 예수님의 무고함을 알면서도 십자가에 처형한 빌라도와 빼닮았다. 어느 시대에나 있을 법한 사악한 정치 권력자의 횡포를 고발하는 예언자의 죽음 앞에서 정의와 공평의 하느님께서 다스리실 하느님의 나라를 고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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